[부도밭 기행] ⑥ 계당산 쌍봉사 부도
[부도밭 기행] ⑥ 계당산 쌍봉사 부도
  • 신재호 기자
  • 승인 2019.12.23 15: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년사찰의 나이테 부도밭
통일신라시대 조각이 시간을 거스르며 정교한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는 철감선사탑. 왼편 뒤쪽으로 철감선사탑비(보물 제170호)가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조각이 시간을 거스르며 정교한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는 철감선사탑. 왼편 뒤쪽으로 철감선사탑비(보물 제170호)가 보인다.

 

사찰이 산에 있어 산사이듯, 산과 사찰은 한 덩어리로 얽혀 겹겹의 세월을 동고동락했다. 언제부터 그 사이를 더욱 견고하게 이어주는 역할이 ‘부도밭’이라 생각됐다. 그 산사에서 정진하며 후학들을 경책하고 열반에 들어선 스님들의 자취가 밭처럼 골과 이랑을 이루며 당당하게 서있다. 마치 산을 지키는 ‘산감’이 되어 산과 사찰을 외호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비슷한 사진의 나열로 보일 수 있는 주제여서 마지막까지 고심하겠다는 다짐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법주사 팔상전을 닮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전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법주사 팔상전을 닮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전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마지막 여정의 선택지는 색다르게 화순 쌍봉사로 정했다.

쌍봉사는 널리 알려진 사찰은 아니다. 원래는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우리나라 목탑 원형을 간직한 대웅전으로 알려졌으나, 1984년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그나마 소실 전 사진이 다양하게 남아있어 원형그대로 정면1칸, 측면1칸에 3층 목탑형식 전각으로 1986년 말 다시 복원하였다.

사찰에 들어서니 여교 동창모임 같아 보이는 50대 참배객 한 무리가 재잘거리며 경내를 둘러보고 있었다. 11월 중순임에도 산사는 맑고 고운 햇살에 포근히 안겨 있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이렇게 좋은 친구들과, 이렇게 멋진 사찰을…. 요약하면 ‘이렇게 좋은 날’을 찬탄하는 돌림노래를 들으며 부도를 향해 올라갔다.

쌍봉사 부도인 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은 미술과 조각에 문외한 이가 봐도 한눈에 반할 아름다움이 있다. 철감선사는 통일신라시대 스님으로, 중국 당나라로 들어가 불교를 공부했으며, 문왕때 화순지역의 아름다운 산수에 이끌려 사찰을 창건하는데, ‘쌍봉’인 그의 호를 따서 ‘쌍봉사’라 하였다. 경문왕 8년(868) 71세로 입적하니, 왕은 ‘철감’이라는 시호를 내리어 탑과 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촘촘하게 새겨나간 빼어난 조각은 각 면마다 문짝모양, 사천왕상, 비천상 등이 자리하고 있다. 지붕돌에는 특히 최고조에 달한 조각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어서, 낙수면에는 기왓골이 깊게 패여 있고, 각 기와의 끝에는 막새기와가 표현되어 있으며, 처마에는 서까래까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걸작이다.
 

주차장에서 처음 마주한 쌍봉사의 첫 모습. 담장과 처마가 조화롭고, 높이 자란 나무가 멋스럽다.
주차장에서 처음 마주한 쌍봉사의 첫 모습. 담장과 처마가 조화롭고, 높이 자란 나무가 멋스럽다.

촬영을 마치고 법당 쪽으로 내려오는데, 저절로 ‘이렇게 좋은날’이 머릿속을 맴돈다. 부드럽고 맑은 볕이 들고, 11월 중순임에도 단풍의 화사함이 남아있고, 조각이 살아있는 성보를 만나고……. 마침 오르기 전에 인사를 드렸던 주지스님이 경내를 살피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 촬영하고 내려 오냐’는 말에 웃으면 화답하니 ‘불교신문에 우리 절이 예쁘게 나왔으면 좋겠다’며 작별인사를 건네주셨다. 스님의 기억에도 ‘이렇게 좋은날’로 남아있을 것이다.

화순=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 ‘부도밭 기행’ 연재는 여기서 마칩니다. 그동안 관심과 성원을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