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법정스님의 ‘낡은 옷을 벗어라’를 읽고
[서평] 법정스님의 ‘낡은 옷을 벗어라’를 읽고
  • 이미령 불교강사 · 경전이야기꾼
  • 승인 2019.12.2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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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벗어야 할 것은 구태의연한 사고방식
이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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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법정스님 원적 10주기를 맞아 아직까지 출간되지 않은 숨어 있던 원고들을 모아 엮은 책이 나왔다는 겁니다. 반가움에 서점에 달려갔습니다. 단정한 커버에 제목조차도 아련합니다. <낡은 옷을 벗어라>.

‘그동안 내 몸과 마음을 칭칭 얽매고 있던 욕심과 집착을 훌훌 벗어버리라는 권유의 말씀인가?’ 아마 법정스님의 글을 사랑하는 시중의 독자들 중에는 저와 같은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법정스님의 간결한 문장을 여전히 필사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고 위안을 지금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람결마저도 숨을 죽이며 머물다 갈 불일암의 고요 속에서 세속의 소란스런 진동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법정스님의 글을 흠모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낭만은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갔음을 책을 펼쳐 읽자마자 깨달았습니다. 스님이 벗으라고 지적한 그 낡은 옷은 우리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게으르고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는 마음가짐을 벗어버리라는 뼈아픈 글들이었지요. 그럼 그렇지요. 저 역시도 사람들의 아련한 ‘법정 읽기’에 잠시 휘둘린 탓에 날선 경책과 칼칼한 문체의 진짜 법정스님 글을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책에 실린 68편의 글들은 시와 불교설화를 제외하고는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구태를 벗으라는 경책의 내용이 주를 이룬 가운데 구태를 벗어야 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수행자들임을 스님은 아주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문이란 더 말할 것도 없이 도에 뜻을 둔 구도자이다. 세속적인 온갖 것을 버리고 출세간적인 청정도를 닦는 수행자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고장에 살고 있는 사문들의 생태는 어떠한가? 반문할 여지도 없이 우울할 뿐이다. (중략) 10대와 20대는 ‘학교병’에 들고, 30대는 ‘주지병’, 4,50대는 ‘안일병’에 걸려 있다고.”

1965년 12월26일자 ‘사문은 병들고’란 글의 일부입니다. 제발 자신의 진단이 오진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스님은 이런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수행하겠다고 출가해서는 세속의 학교병에 걸려 있는 젊은 수행자에게서는 승단에 제대로 된 교육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음을 개탄하고, 한창 수도에 여념이 없을 연륜인 30대 사문이 주지 벼슬을 기웃거리는 모습에서는 너무나 애석하다고 말합니다.

세간에서 치더라도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일할 때인 4,50대 사문들이 현역에서 물러앉아 뒷방노장으로서 조로하고 있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비판에는 구도의 길에서 안일처럼 무서운 질병이 없다고 일갈합니다. 이런 현상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법정스님이지요. 

보셨듯이 이 책은 대체로 사문들, 그러니까 세속의 불자들보다는 출가한 스님들에게 더 간곡한 당부의 말씀으로 읽힙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란 소제목 아래에는 8편의 글이 연작처럼 이어지는데 하나같이 2019년 오늘날 불교계를 향한 쓴소리여서, 이 글들이 1960년대에 쓰신 것인지 바로 엊그제 쓰신 것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법정스님이 1970년대 중반 송광사 불일암으로 들어가 수행하고 있는 모습.
법정스님이 1970년대 중반 송광사 불일암으로 들어가 수행하고 있는 모습.

스님의 칼칼한 일성 한 대목을 더 소개해볼까요?

‘성탄이냐? 속탄이냐?’라는 제목의 글에서 스님은 각 사찰이 부처님오신날에 떠들썩하게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에 반해서 부처님 성도절은 너무나 조용하게, 아니, 아예 소홀하게 보내고 있는 현실을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1966년에 쓰인 이 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4월 초파일! 이날은 부처님이 탄생한 날이 아니다. 실달태자가 자기 엄마한테서 나온 그러니까 한낱 속인의 생일이다. 부처님에게도 굳이 생일이 있어야 한다면, 그날은 성도한 날이어야 할 것이다. 8만4천 번뇌를 말끔히 털어버리고 ‘지혜의 눈’을 뜨면 바로 그날이라고.”

이 글을 보면서 제 자신 알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실 부처님오신날 온나라에 아름다운 연등이 내걸리고 거리축제가 펼쳐지며 가족들이 사찰로 나들이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 심지어 외국인들에게도 연등축제는 한국을 기억하게 만드는 아주 멋진 축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도 좋겠지요. 어쩌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게 더 낫습니다.

하지만 정작 부처님을 기리고 부처님을 닮아가려고 하는 불자들에게 정작 부처님오신날은 몇월 며칠인지 만큼은 제대로 가려보자는 스님의 지적 앞에서 뭔가 변명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축제에 취해 흥겹기만을 바랐지만 무엇을 기뻐하고 축하해야 하는지 그 주소가 한참 어긋나버린 것은 아닌지, 50년 전 법정스님은 그때 이미 교계의 이정표가 되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이 책에는 또 하나의 큰 주제가 있으니 그건 바로 한글대장경 번역에 대한 당부입니다. 동국역경원이 출범해서 저 역사적인 대장경 번역불사가 마침내 그 첫 번째 성과물을 보이려 할 즈음에 스님은 쉬지 않고 당부에 당부를 늘어놓습니다. 한문경전을 우리말로 옮길 때 어중간한 번역은 경계해야 하며, 시대의 흐름을 놓치거나 외면하지 말고 그 시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한다는 생각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스님의 평소 생각이 담겨 있지요.

읽히지 않는다는 세간의 평을 거듭 들려주면서 경전번역은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가 그룹이 정성스럽게 치밀하게 서로 의논하면서 공을 들여야 한다고 스님은 몇 번이나 강조합니다. 

현재 조계종 포교원이 불교성전편찬불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애를 쓰고 있는데, 법정스님의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스님도 지금 이 불사에 참여하고 계신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쪼록 불교성전편찬위원회의 여러분들이 스님의 이 말씀을 반드시 숙지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법정스님의 글을 목마르게 기다리던 독자들에게 이 책은 정말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지요? 이 책은 단비가 아닌, 아프게 내 몸과 마음을 후려치는 죽비소리인 것을요. 심지어 (짐작하건대) 재수 끝에 도전한 대학입시에 또다시 실패를 맛본 J군에게 들려주는 글에서도 스님은 무조건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건네지는 않습니다.

“어린 영혼이 치르기에는 너무나 과중한 시련이고 새벽마다 추위를 무릅쓰고 그토록 정성스레 아들의 진학을 불전에 빌던 엄마와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렸기 때문에” 스님 자신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스님은 말합니다. “지금 이 젊은이가 이번에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고 해도 그 나이 또래에서는 쉽게 얻어질 수 없는 인생에의 고뇌와 인식이 싹텄을 것”이라고 말이지요. “자기의 생에 대한 인식! 그것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살아가는 생명 앞에 언젠가는 있어야 할 귀중한 체험”이니, “설령 지금 실패했다고 해도 이 젊은이는 지금 안으로 자라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실패하지 않았으며”, “오늘 입은 상처를 다스리며 내일로 뚫린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고 말씀을 맺습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나만 믿어”라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를 기다리던 독자들에게 스님의 이 글이 어떻게 읽힐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역시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로군’ 하면서 그냥 휙 넘겨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수행자의 위로는 이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겪는 처참한 실패로 인해 자신의 삶 자체를 처절하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그 사람은 거듭난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것이지요. J군은 법정스님의 이런 조심스럽지만 간곡한 격려의 글에 과연 힘을 얻었을까요? 
 

낡은 옷을 벗어라 / 법정 글 / 불교신문사
낡은 옷을 벗어라 / 법정 글 / 불교신문사

신간 <낡은 옷을 벗어라>에 실린 스님의 글은 솔직하고 때로는 아프게 느껴질 정도로 직설적이고 비판적입니다.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평화의 메시지를 기다리던 독자들에게는 거리감이 느껴지지나 않을지 걱정스러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스님의 일평생은 자신과 세상에 언제나 깨어 있으라는 경책으로 일관한 삶이었습니다.

일평생 올바른 사문이란 어떤 사람인가, 수행하는 자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고 경전을 현대인들에게 읽히기 위해서는 어떻게 번역하고 널리 전해야 하는가를 아주 깊이 고민하신 분이 법정스님이었지요. 그런 점에서 스님의 이 글들은 1960년대 불교계 진단이면서도 2019년 현재를 꼼꼼하게 진찰하고 내린 진단임에 틀림없습니다.

30대, 아직 그 시퍼런 수행자의 결기가 살아 있는 법정스님의 메시지가 스님 떠나신 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필요하다는 것이 슬프기까지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리가 세상에서 빛을 발하려면 불교계가 먼저 구태를 벗어야 하는 것을요.

이 책이 수많은 수행자들에게 읽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일선 포교사들의 손에서도 이 책장이 넘겨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행복과 안분지족이면 그만이라는, 얼핏 보면 소탈한 듯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나와 내 가족의 행복과 무사안일만을 기원하는 수많은 불자들에게도 읽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거듭나는 일, 구태를 벗어버리는 일만이 나를 살리고 당신을 살리고 우리를 살리고 시대를 살린다는 30대 법정스님의 일갈이 연말의 불교계를 뒤흔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불교신문3546호/2019년12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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