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4년 신년 특집’
은퇴 후 강원도서 수행하는
김진선 前 강원도지사


평창올림픽 유치 주역
‘성실’ ‘책임’ ‘공평’ ‘청렴’
지키며 50년 공직 마무리

오대산 월정사 인근에
초막 ‘우허당’ 짓고 정진
모든 불교경전 읽겠다 ‘원력’

“물질과 정신을 조금씩
비워가는 것이 수행”

지난해 12월10일 평창에 마련한 초막 ‘우허당’에서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12월10일 평창에 마련한 초막 ‘우허당’에서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진선 전(前) 강원도지사.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관련해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이름이다.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전 세계 스포츠축제를 유치한 주역이다. 민선 도지사를 3차례나 연임한 정치인이라는 이력도 빛이 난다. 현재는 40여 년 공직자로서의 삶을 뒤로 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은퇴생활을 보내고 있다. 인생의 후반부는 오롯이 불자로서의 삶이다.

평창 월정사 인근, 오대산 자락에 우허당(愚虛堂)이란 초막을 짓고 미처 못다 한 불교공부에 열중하는 중이다. 근황이 궁금해 지난 12월10일 우허당을 찾았다. 1946년생으로 어느덧 일흔 중반의 나이다. 누구보다 높고 화려한 인생이었지만 숨겨진 아픔도 있었다.

“삶이란 이런저런 업(業)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고 갈등하는 것이며 결국은 만물에 조금씩 동화되어 가는 것이더라”는 인생론이 매우 장렬하게 들렸다. 이제는 인생을 관조할 수 있다.

대략 한 달에 보름은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나머지 보름은 우허당에서 지낸다. 할아버지의 아호(兒號)인 ‘우당’에서 따왔고 우직하게 내려놓으며 살겠다는 말년의 다짐이 배어있는 명칭이다. 원래 공사현장 사무소로 쓰이던 컨테이너건물을 조금 손봐서 거처로 삼았다.

2017년 6월부터 여기서 스스로 밥을 해먹고 책을 읽고 쓰며 출가수행자와 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야말로 초야에 머물며 자연을 벗 삼아 지내는 안빈낙도다. 본래 공직에 입문할 때부터 낙향이 꿈이었다. 혹자들에겐 그저 심심하고 단조로운 일상일 수 있겠으나, 그 자신에겐 대자유인의 행복이 따로 없다. 그는 “이제는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날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김 전 지사는 무엇보다 평창올림픽 덕분에 유명해졌다. 알다시피 평창올림픽은 세 번의 도전 실패 끝에 기어이 이뤄낸 값진 결실이자 매우 드문 사례다. 김 전 지사는 강원도지사이자 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서 그 좌절과 영광의 순간을 모두 함께 했다.

작년 초 발간한 저서 <평창실록, 동계올림픽 20년 스토리>에는 올림픽을 발원하고 준비하던 눈물과 웃음의 기록을 모았다. 책은 ‘세계 최대의 스포츠축제’를 강원도에서 열어야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사실은 1994년 1월 설악산 신흥사의 뒷방에서 시작됐다는 놀라운 사실을 전하고 있다.

강원도청 기획관리실장이던 그는 그때 ‘국제관광엑스포(속초) 개최, 환경 선언-미래가치 투자·트렌드 변화 선점 그리고 동계올림픽 개최’라고 메모했다. 그리고 “해야 하는 거라면 10번이고 100번이고 해야 한다”는 평소 소신으로 밀어붙였다.

2014년 4월 게리 젠켈 미국 NBC 사장을 비롯한 올림픽 대표단이 방한했을 때 가진 식사자리를 기억한다. △한국에서 정확히 30년 만에 열릴 올림픽이란 점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자 남북으로 분단된 유일한 행정구역인 강원도가 개최지라는 점 △나라에서 가장 개발이 더딘 강원도에 개발의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위주로 당위성을 치열하게 설명했다.

삼척이 고향인 김 전 지사는 고등학생 시절, 춘천에서 열린 경진대회에 학교 대표로 참가한 경험이 있다. 삼척에서 춘천까지 꼬박 14시간 동안 버스를 타야 할 만큼 강원도는 첩첩산중 그 자체였다. 그는 이때 강원도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대통령이나 연예인 등등 ‘뭐가 되겠다’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겠다’는 꿈을 꾸던 공심(公心)의 어린이였다. 이후 반세기만에 ‘산골’의 대명사는 덕분에 새롭고 낯선 미래를 만났다. 결국 평창올림픽은 김 전 지사의 애국심과 책임감, 고향에 대한 사랑, 도저한 투지 등이 응축된 결정체인 셈이다.

1974년 제1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나라의 녹을 먹었다. 임지(任地)는 거의 다 강원도였다. 그리고 강원도에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비결을 물었다. 공직자의 ‘교과서적인’ 4대 덕목 ‘성실’ ‘책임’ ‘공평’ ‘청렴’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짜 실행해왔다고 자부한다.

올라갈 만큼 올라간 인생이지만 살면서 회한이 없을 순 없다. 젊어서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아버지 몰래 월남전에 참전했던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엄청난 걱정을 끼쳤고 끝내 아버지마저 자기보다 한참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

‘보편적 절망’에 시달리는 청년들을 위한 조언을 해달라는 질문에 그는 “꼰대 취급을 당할 게 뻔해 안 하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단, “우리나라가 언제는 쉬울 때가 있었나. 늘 힘들고 고통스러웠다”는 말은 남겼다. “어려울수록 초심을 돌아가라. 원칙대로 접근하라.” 어쨌든 이것뿐이다.

여기까지야 감동적이고 전형적인 성공스토리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반드시 지독한 그늘이 있다. 정확히 1980년 6월1일이다. 결혼해 아들을 낳았는데, 1주일 만에 장애아로 판명이 났다.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그때 처음 했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는 불자이지만 유난히 목사 친구나 후배가 많다. 원래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자신도 목사가 될 뻔했다. 아들은 일생일대의 시련이었고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회의와 원망으로 가득했다. 그는 “정말로 어찌할 수가 없는 날들이었다”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교회로 가는 발길을 끊었다.

서울에 거주하던 때고 별 생각 없이 동네에 있는 사찰에 갔다가 뜻하지 않은 전기가 생겼다. 법당에 앉으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이었다. 그 기분이 너무 고마워서 새벽 3시면 꾸준히 절을 찾았다. 아내는 무릎 연골이 상할 정도로 108배를 했다.

신흥사 조실이었던 고(故) 무산스님과 친해지면서 심리적으로 크게 도움을 받았다. “그 아이가 당신의 모든 업을 안고 태어난 것이다. (속죄가 되었으니) 이제는 그 번민과 고통의 끈을 놓고 지내라.” 물론 말 몇 마디에 실존의 신고(辛苦)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한참 응어리를 끌고 다니다가 15년이 지나서야 좀 진정이 됐다”고 했다.

새해에 한국 나이로 일흔 다섯 살이 됐다, 스스로도 “정리의 기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당장 죽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리를 해야만 앞으로 올 상황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승승장구한 공인(公人)답다.

나라와 사회 문제에 관한 해법을 제시하는 책과 현대판 명심보감처럼 청소년을 위한 지침서는 꼭 한 번 써보고 싶다. “어떤 종교든 종교심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며 한없는 축복이다. 불심(佛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며 불자들에게 신년 덕담도 전했다. 다음 대목부터는 깨달음에 이른 도인 수준이다.

“왜 사냐고요. 태어났으니까 살아야하지요. 삶이란 업을 짓는 것입니다. 선업이든 악업이든 이도저도 아닌 무업(無業)이든, 업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번뇌하고 갈등하는 과정이 인생이더군요. 결론은 누구나 한 줌 재가 되고 적멸이 된다는 겁니다. 나이 들어 생각하니, 우주 만물에 조금씩 동화되어가는 과정이 바로 삶인 것 같아요.”

“젊었을 때는 무조건 앞만 보며 달려가는 게 참 좋았다. 애쓴 만큼 실제로 성취가 되는 쾌감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욕심이 만병의 근원이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조금씩 비워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듣고 우허당을 나왔다.
 

김진선 전 지사는...
1946년생으로 1974년 행정고시로 공직에 들어가 강원도와 내무부 등에서 근무했다. 1998년 민선 강원도지사에 첫 당선된 후 2010년까지 12년 간 제32·33·34대 3선 도지사로 일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집행위원장과 공동유치위원장을, 2011년 올림픽이 유치된 직후부터 2014년 7월까지 초대 조직위원장을 맡아 올림픽대회 개최준비를 했다. 지금은 완전한 자유인으로 오대산 자락에서 또 다른 인생을 일구고 있다.

평창=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불교신문3547호/2020년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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