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사진] ⑤ 범어사 주지 경선스님의 성철스님 문하 행자시절
[한 장의 사진] ⑤ 범어사 주지 경선스님의 성철스님 문하 행자시절
  • 박봉영 기자
  • 승인 2019.12.2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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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60주년 맞이 특별기획’
문경 김룡사 행자시절 청담스님 방문기념 한 컷…

행자시절과 사미시절 받은 가르침이 평생의 밑거름이 되는 출가수행자에게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 만큼 중요한 일도 흔치 않다. 좋은 스승을 만난다해도 시절인연이 닿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을뿐더러 좋은 스승을 찾는 안목이 길러지지 않은채 스승을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얄궂다. 근현대 선지식으로 꼽혔던 성철스님을 시봉했으나 사제의 연을 맺지 못한 아쉬움을 두고두고 갖고 있는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경선스님은 행자시절 사진만은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범어사 주지 경선스님은 성철스님 문하에서 3년의 고된 행자생활을 거친 뒤 범어사에서 출가했다. 그 역시 공부였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문경 김룡사 행자시절 청담스님의 방문으로 찍은 사진이다.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이 나란히 자리잡고, 그 옆으로 서옹스님과 녹원스님, 법전스님, 뒷줄에 혜성스님과 종진스님, 도성스님, 선래스님이 섰다. 청담스님 옆 서 있는 행자 가운데 가장 오른쪽이 경선스님이다. 이때의 이름은 만연(曼衍)이었다.
범어사 주지 경선스님은 성철스님 문하에서 3년의 고된 행자생활을 거친 뒤 범어사에서 출가했다. 그 역시 공부였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문경 김룡사 행자시절 청담스님의 방문으로 찍은 사진이다.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이 나란히 자리잡고, 그 옆으로 서옹스님과 녹원스님, 법전스님, 뒷줄에 혜성스님과 종진스님, 도성스님, 선래스님이 섰다. 청담스님 옆 서 있는 행자 가운데 가장 오른쪽이 경선스님이다. 이때의 이름은 만연(曼衍)이었다.

 

1   부산불교를 책임지고 있는 금정총림 범어사. 한국불교와 조계종단 내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하다. 제14교구 교구장 소임을 살고 있는 경선스님은 금정총림 방장 지유스님의 법을 이으며 부산불교를 책임지고 있다. 

경선스님은 15살 때인 1963년 대구 파계사로 입산해 1967년 범어사에서 사미계를 받았다. 파계사에서 파계사 성전암, 문경 김룡사를 거쳐 범어사와 인연이 맺어졌다. 5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4년 동안의 행자생활은 생생하다.

파계사에서의 첫 행자생활은 종수스님 문하였다. 문경 봉암사결사를 이끌었던 성철스님이 문하 제자들과 함께 파계사 성전암에 주석하고 있었다. 대단한 도인이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행자생활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 성철스님의 딸 묘엄스님의 사형 묘전스님이 파계사에 들러 종수스님을 만났다. 성전암으로 성철스님을 뵈러 가는 길이었다. 빡빡머리 행자였던 경선스님은 묘전스님의 손에 이끌려 성전암으로 올라갔다. 묘전스님은 경선스님의 속가 부친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성철스님은 겨우 15살이던 경선스님에게 만연(曼衍)이라는 법명을 주었다. 제방에서 찾아오는 납자들과 문하 제자들로 인해 성전암은 늘 비좁았다. 성철스님은 1965년 문하의 제자들을 이끌고 문경 김룡사로 수행처를 옮겼다. 성철스님 문하에서는 행자생활 10년을 거쳐야 비로소 사미계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행자생활은 고됐다. 새벽 3시부터 시작된 일과는 밥 짓는 일부터 공양 준비, 법당 청소와 기도, 틈틈이 3000배까지 15살 행자 만연이 감당하기엔 버거웠다. 하지만 성철스님이 누구던가. 모두가 도인으로 떠받드는 스승 아래서 출가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견뎠다. 

2   멋모르던 행자 만연은 공양간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밖에서 사진을 찍으러 나오라고 했다. 일하던 복장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서울에서 큰스님이 오셨다고 했다. 청담스님 일행이었다. 성철스님을 중앙으로 청담스님과 서옹스님이 옆에 섰고, 그 옆으로 녹원스님과 법전스님이 자리를 잡았다. 조계종 종정과 동국대 이사장, 총무원장 등을 두루 역임한 큰어른들이다. 

뒷줄에 혜성스님과 선래스님, 종진스님, 도성스님 등이 섰다. 행자 만연은 청담스님과 도성스님의 사이에 굳은채 서 있었다. 뒤편엔 서울에서 청담스님 일행이 타고온 지프차가 있었다. 

빛바랜 이 사진을 꺼내온 경선스님은 참 소중한 사진이라고 했다. 초발심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오래돼 흐릿해져 설명을 듣지 않고는 누구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청담스님은 성철스님의 스승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범어사로 가는 중이었다. 성철스님의 스승이라고 하니 행자 만연은 엄청난 무게감에 깜짝 놀랐다. 그때는 그 분이 동산스님(1890~1965)이라는 것을 몰랐다. 

성철스님은 3000배를 시키기로는 선수였다. 잘해도 3000배, 못해도 3000배였다. 행자 만연은 그 뜻을 알지 못했다. 결국 너무도 힘들었던 행자생활에 지쳐 행자 만연은 얼른 출가하고 싶은 마음에 부산행 버스에 올랐다. 범어사에 가면 동산스님이라는 큰스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떠난 것이다.

범어사에서 수계하고 50년이 지나 금정총림 방장 지유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게 됐다. 큰스님의 가르침은 길이 막혔을 때마다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심지법문이었다. 성철스님 문하에 머물지 못했지만 5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지유스님을 스승으로 만났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없다고 했다.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난다면 성철스님을 10년 시봉하고 출가하겠느냐고 물었다. 경선스님은 주저없이 그럴 것이라고 했다. 고된 행자생활이 늘 바른 길로 인도하는 지남이 된다는 것을 이제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범어사=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불교신문3545호/2019년12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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