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사유화ㆍ세속화되는 선학원 ④ 특별기고

개인 아닌 다수 사찰 재산 출연
재단법인으로 이사회 전권 행사
위법 아니나 설립정신 맞지 않아

선학원 출범 초 정관 ‘평의회’
‘분원장회의’로 재건 운영하면
민주적 의결구조 만들 수 있어

조기룡
조기룡

근현대기, 한국불교의 정신을 올곧게 지켜온 선학원이 소란하다. 선학원은 일제강점기에 사그라지는 선풍(禪風)을 진작시키기 위해 만공, 용성, 만해, 남전, 도봉, 석두, 성월 등의 조사 스님들에 의하여 창건됐다. 이후 선학원은 그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듯이 ‘전통 선풍을 수호하고 불조선맥을 계승하며 일제사찰령에 저항하는 항일 불교를 지향한’ 한국불교의 수호자이자 계승자였다. 

그 선학원이 지금은 소란에 휩싸여있다. 선학원의 현재 소란 속에는 만해가 창건 스님들에 해당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도 있지만 그 부분은 전공학자들의 논의에 맡기기로 하고, 본고에서는 현재 선학원의 조직 운영과 관련된 부분만 논하기로 한다. 

조직의 운영은 제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재 불교계의 논란이 되고 있는 산학원의 문제는 제도 즉, 정관 및 관련 규정과 연계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선학원의 운영과 관련한 제도적 문제의 핵심은 ‘이사회의 운영 권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요지는 ‘선학원은 한 사람의 개인이나 한 사찰이 아닌 다수의 사찰이 재산을 출연하여 설립한 재단법인임에도 불구하고, 재산 출연 사찰들은 배제된 채 이사회가 전권을 가지고 운영한다’는 부분이다. 전 재산을 선학원에 내고도 절을 뺏길까봐 이사회의 눈치만 볼 수밖에 없다는 분원장 스님들의 하소연이 담긴 교계의 언론 보도를 종종 접하게 된다. 

이 문제가 난제인 이유는 선학원 이사회의 이러한 독점적 권한이 사회법상으로는 위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법의 법리상, 사단법인은 총회가 최고의결기구이지만 재단법인은 이사회가 최고의결기구이기 때문이다. 이는 ‘선학원 이사장 직무집행정지가처분’ 등 선학원 이사회의 의결에 불복하여 제기한 소(訴)들이 법원으로부터 기각을 당했음이 반증한다. 

이는 문제의 해결이 행정이 아닌 정치의 영역에 있음을 시사한다. 선학원의 이사회와 분원장 그리고 조계종의 협의와 조정에 달려있는 것이다. 선학원의 이사회가 기득권을 양보하느냐 안 하느냐, 분원장들이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얼마나 고통을 감수할 것이냐, 그리고 조계종이 양자뿐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3자간의 입장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느냐가 해결의 관건이다. 

필자는 그 해결의 단초를 선학원의 성립사에서 찾고자 한다. 선학원은 재산을 실체로 구성된 재단법인이지만, 그 성립과정을 보면 다수의 스님들이 선풍진작을 위하여 결성한 단체이기에 사단법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출범초기 ‘평의회’ 주목 

이에 선학원의 출범 초기 정관인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선리참구원 기부행위 정관>에는 사단법인의 총회적인 성격을 갖는 ‘평의회’를 두고 이사 선출권과 예산ㆍ결산 심의권 등을 부여하여 이사회를 견제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초기에는 이와 같이 분원장들이 이사회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었는데, 평의회가 해체되고 그 권한들이 이사회로 귀속되면서 견제를 할 기구가 법적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현재의 이사회에 권력이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관에 평의회의 설치를 명시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금 선학원의 상황에서는 분원장회의가 평의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일정수의 분원장 출석을 의사정족수로 하고 그 출석인원의 과반수를 의결정족수로 하는 분원장회의를 정관상 신설하면 의결기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권한에 이사의 선출권과 해임권을 부여하면 그것만으로도 이사회의 권한을 상당부분 견제하면서 분원장들이 선학원의 운영에 참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는 다시 말하지만, 이사회와 분원장들 그리고 조계종의 정치적 해결에 달려있다. 어떤 문제든 해결을 위해선 한 마음(一心)이 되어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선학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공동체 인식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선학원의 문제가 300개가 넘는 사찰에 대한 재산 분쟁이 아닌 선학원이 그 이사와 분원장 그리고 한국불교의 공동체라는 것에 인식이 모여야 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선학원 문제의 당사자들이 선학원이 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지고 여법하게 난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부처님과 선학원의 조사님 전에 서원한다.

[불교신문3545호/2019년12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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