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계명성 전집’ 펴낸
‘비구니 스님들의 어머니’ 명성스님


90평생 승가교육과 연구 매진
그간의 저작 모은 20권의 대작

청도 호거산 운문사를
최고의 비구니 교육도량으로
비구니 스님들 자질 높이며
한국불교의 발전 견인

법계명성 전집

명성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한국불교 비구니계의 거목인 청도 운문사 회주 명성스님이 구순(九旬)의 나이를 맞아 그간의 저술을 모은 <법계명성(法界?星) 전집(全集)>(불광출판사)을 펴냈다. 90평생을 올곧고 깨끗하게 살아온 90년 삶의 여정을 만날 수 있다.

전집은 명성스님의 저술을 비롯해 연구 논문, 편서와 역서, 법문, 강의, 기고문, 공예 및 서예 작품, 사진집, 제자들이 전해 받은 가르침과 여러 인연 등 소중한 자료들을 묶어 총 20권으로 펴낸 대작이다.

청도 호거산 운문사를 세계적인 비구니 교육도량으로 일구고 조계종 전국비구니회장으로 일하며 비구니 스님들의 자질과 위상을 크게 높인 당신의 지혜와 역량이 고스란히 담겼다. 전집과 함께 스님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 영문한 저서와 오디오북도 만들어져 풍성함을 더한다.

명성스님은 모든 비구니 스님들의 어머니이자 한국 비구니 역사의 산증인으로 평가된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종단 비구니 스님 6000여 명 가운데 2100여 명이 운문사승가대학 출신으로  스님의 제자들이다. 1970년 운문사 강원 강주로 부임한 이래 폐사지나 다름없던 사찰을 중창하고 그에 못지않은 인재불사로 한국불교사에 거대하고 튼튼한 한 획을 그었다.

서당에서 훈장이 가르치는 식이었던 과거의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의 틀을 깨고 모든 수업을 논강식 교육 방법으로 바꾸며 교육혁신을 이뤘다. 이와 함께 경전뿐만 아니라 미술, 외국어, 심리학, 철학, 유학, 다도, 꽃꽂이, 피아노, 서예 교육으로 비구니 스님들의 능력을 다방면으로 증진시켰다. 

시대를 앞서간 교수법으로 승가교육을 환골탈태시킨 선구자로도 각광받는다. 비구니가 비구니로부터 전강(傳講)을 받는 전통을 복원한 인물도 명성스님이다. 2007년 조계종 명사 법계에 품서되어 불교계의 든든한 큰 어른 역할을 하고 있다. UN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탁월한 불교 여성상’(OWBA)을 수상하면서 세계 불교계의 지도자로 올라섰다.

전집은 이렇듯 ‘명성스님’이라는 한 개인의 생애와 사상을 총망라하고 있다. 아울러 그 생애의 길이와 깊이가 말해주듯, 근현대 비구니 스님들의 변화상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한국불교의 발전해온 자취를 여실히 보여주는 만큼 현대사의 귀중한 문헌자료다.

<법계명성 전집> 편찬위원장 진광스님은 “명성스님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그 한결같은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슴이 뜨거워진다”며 “<법계명성 전집> 발간은 후학들이 모범 삼아 따르고 배워야 할 지남(指南)의 자료를 남기려는 데 가장 큰 뜻이 있다”고 역설했다.
 

명성스님

“즉사이진...무슨 일이든 성실하게”
행동으로 가르친 이 시대 참교육자  

명성스님은 <법계명성 전집> 발간을 맞아 지난 5일 주석하고 있는 운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책에 담긴 내용과 의의를 설명했다. 무엇보다 그간 누구보다 청정하고 굳세게 살아온 90년의 삶을 회고하고 교훈을 전하는 자리였기에 큰 여운을 남겼다. 아흔 노구에도 스님의 총기는 또렷했고 언변은 부드러우면서도 뛰어났다.  

명성스님은 1930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1952년 합천 해인사 국일암에서 선행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명성스님의 첫손 가는 업적은 운문사를 세계적인 교육도량으로 일신하고 비구니 스님들의 자질과 위상을 크게 높인 점이다. 1970년 운문사 강주로 부임해 무려 2100여 명의 학인들을 길러냈다.

또한 40여 동에 이르는 전각과 요사채를 신축, 증축, 보수하며 전국 최대 규모의 비구니교육기관으로 발전시켰다. ‘그 많은 제자들을 키우면서 힘든 적도 있었겠다’는 질문에 스님은 외려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답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기보다 함께 동고동락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법호(法號)인 법계(法界)가 스님의 성정을 대변해준다. 언제나 마음을 허공(법계)과 같이 넓게 썼기에, 언제든 너그러울 수 있었고 힘들어도 절대 오래 가지 않았다.

즉사이진(卽事而眞)은 스님의 좌우명이다. <법화경>에 나오는 말로, ‘크고 작은 일에 항상 진실하게 대하라’는 뜻이다. 진실하게 산다는 건 막연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성실하게 산다는 것이다. “작은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결코 큰일을 이루지 못합니다. 일통일체통(一通一切通). 일 잘하는 사람이 공부도 잘 하고 공부 잘하는 사람이 일도 잘하는 법이지요.”

학인들 사이에서 스님의 별명은 ‘0.1mm(밀리미터).’ 경전을 읽든 옷을 개든 그야말로 단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범한 스승은 말을 하고, 훌륭한 스승은 설명하고, 뛰어난 스승은 모범이 되고, 위대한 스승은 감화를 줍니다.” 스스로 즉사이진으로 일관되게 살아왔기에 수많은 비구니 제자들이 그 향기를 맡으며 따라온 것인 모양이다.  

반듯하게만 보이지만 그 속의 내면은 전혀 딱딱하지 않고 보살심으로 빛난다. 여러 말씀 가운데 가장 감동적이었던 대목은 교육론이다. 2000명 넘게 가르치면서도, 학인이 그 어떤 비행을 저지르고 소란을 일으켜도 단 한 명도 강원에서 내쫓은 적이 없는 어른이다.

“나는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행여 나쁜 짓을 했더라도 그 사람 역시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에 근본 자리는 착합니다.” ‘욕교여(欲敎汝) 선자교(先自敎) ‘타인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나부터 가르쳐라’는 말을 가슴에 새겼기에 가능한 인내이고 자비다. “용서가 수행이요, 칭찬이 교육의 비결”이라는 지론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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