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 탈종교 현상이 겹쳐
종단 출가자 현격히 줄어 심각 사태
중생과 함께해야 존재 이유 희망 찾아
근본으로 돌아가 불교 정의 존재이유
역할에 대해 깊은 성찰과 실천 필요한 때
나라와 조직 운명 ‘교육’과 ‘사람’에 있어

진광스님
진광스님

요즘 저출산, 고령화와 탈종교 현상까지 겹쳐 출가자 감소현상이 뚜렷하다. 필자가 출가할 1994년 당시 한해 출가자가 500~600명이나 되었다. 그러던 것이 2014년부터 200명대로, 2016년에는 150명대로 감소하더니 지금은 한해 출가자가 120명대로 급감했다. 이대로라면 10년 혹은 20년 후에는 한국불교의 존폐를 걱정할 정도로 정체절명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비단 불교만의 문제라고도 할 수가 없는 것이 다른 이웃종교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러나 더 문제인 것은 통계청 수치에서 보듯이 불자 또한 고령화에다 현격히 감소한다는 점이다. 이는 애써 무시하거나 외면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자료에 문제가 있다느니,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별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단언컨대 한국불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지금이라도 종단 차원의 TF팀을 구성해 제 문제에 대해 중.장기 대책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9년여 동안 종단 교육을 담당한 필자로서는 더욱 무거운 책임감과 의무감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한 사람이 속세를 뒤로하고 ‘위대한 포기’와도 같은 출가를 한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대사건 이다. 정현종 님의 ‘방문객’이란 시에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머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싯구처럼 말이다.

그런 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연과 사람들을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대했는지 묻고 싶다. 또한 일반 사람들에게 불교와 스님의 존재는 과연 어떻게 생각되었는지 다시금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냉철한 반성과 혁신의 토대 위에 한국불교는 새로운 천년을 내다보는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렇치 못하다면 파울 첼란의 싯구로 사사키 아타루의 책 제목처럼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달라이라마는 “자기 안에 자비와 친절의 사원을 세웁시다!”라는 말과 행동으로 전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낮은 곳에서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모습으로 무너져가던 카톨릭을 다시금 부흥시키고 있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중생과 더불어 함께해야만 비로소 존재의 이유와 희망을 찾을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종교나 철학 이전에 중생과 사회의 행복을 위한 일종의 ‘카운셀러’이자 ‘서비스업’이 아닐까 싶다. 근본으로 돌아가 불교의 정의와 존재이유, 그리고 역할에 대해 깊은 성찰과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무엇보다 한 나라와 조직의 운명은 ‘교육’과 ‘사람’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과 ‘교육’만이 유일한 길이자 희망이며 대안이다. 그런 까닭에 박노해 님의 ‘다시’라는 싯구처럼 우리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더불어 함께 하였으면 한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불교신문3543호/2019년12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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