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이 빈 집을 지킨다
벌레 먹은 햇살이 기웃기웃 적막을 건드린다
움칠, 긴 그림자 하나
허공을 가른다
땔감을 진 노인이 노을을 지고 돌아온다
적막이 길게 하품을 하며
노인의 품에 덥썩 안긴다
초가 한 채가 온통 우주를 흔든다

-이영춘 시 ‘우주 한 채’에서
 


빈 집 한 채가 고요하다. 햇살이 내리는 오후 내내 집은 조용하고 잠잠하다. 그리고 땔감을 지고, 노을을 지고 노인이 집으로 돌아온다. 의지할 데 없이 외로웠던 집과 고요는 돌아온 노인에게 안겨든다.

이 시는 고요를 하나의 몸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 고요가, 적막이 하품을 하고 두 팔을 벌려 한 사람의 품 안에 들어간다. 또 한 채의 집은 건물 이상의, 우주적인 의미를 갖고도 있다. 실은 우주적 존재가 아닌 게 없다. 

이영춘 시인은 최근 신작 시집을 펴내면서 “순간순간의 삶과 고통, 숨소리와 낙루(落淚), 얼룩 같은 흔적, 여기 기록한다”라고 썼다. 우리의 삶 자체도 하나의 개별적이고 특별한 천체다.

[불교신문3543호/2019년12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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