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원효스님의 화쟁, 이상인가 현실인가
“화쟁은 단순히 사회통합적 언어가 아니라 중도”


화쟁은 분별심ㆍ차별심, 관념
집착을 여읜 ‘절대 평등 원리’
불자들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
해탈에 이르기 위한 실천방법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

정운스님
정운스님

불교신문에 자현스님 글이 올라오고, 다음 두 재가자의 반박 글이 올라오더니, 다시 자현스님의 재반박 글이 올라왔다. 평소 소납은 어떤 글이든 논문이든 학자적인 견해가 다를 뿐, 어느 누가 ‘틀리고 맞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한국불교 전공자도 아니고, 원효(617~686)스님에 대해서는 사전적 지식만 알고 있는 ‘주변인’임을 밝혀둔다. 단지 필자를 비롯해 불자들이 원효스님의 면모를 살펴보고,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사유해보자는 의도에서 이 글을 시작한다.

불교신문 지상에 실린 자현스님의 원효에 관한 세 차례 글이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1차 원고에서는 원효의 화쟁사상의 비약함을 말하며, 원효의 화쟁에는 치열한 실천과 성공은 없다면서 ‘원효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2차 원고에서는 원효와 의상을 비교하며(더불어 이통현과 만해까지 끌어들여서) 원효의 윤리도덕을 논하고 있다. 3차 원고에서는 미스코리아와 장자까지 비유하며 화쟁 논리의 모순점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도 원효의 윤리성을 들면서 원효의 망령에 빠져 있는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현스님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자현스님이 원효스님과 관련해 (3차례의) 방대하고 다양한 원고였던 점을 감안해 필자 입장에서 몇 가지로 나누어 군더더기를 붙인다.

첫째, 자현스님이 말하고자 하는 초점이 무엇인가? 원효라는 인물의 계율 파계, 윤리 도덕성 문제인지, 화쟁사상을 비평한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 어떤 특정 논을 이끌 때 한가지로 상통하는 주제가 꾸준히 흘러야 한다. 무엇을 언급코자 하는지 냉정한 논리가 아니라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어 제3의 원효를 만들어내고 있다.

윤리성을 들자면, 원효는 분명히 파계 후 ‘소성거사’라 자칭했고, 자신의 계율 문제를 밖으로 노출시켰다. 원효의 윤리성을 갖고 화쟁사상에 견강부회식으로 비판함은 나무의 곁가지를 붙잡고 본체라고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원효가 스스로 언급한 거사라는 시각에서 한국불교를 보자.

우리나라는 대승불교 국가이다. 대승불교가 일어난 것은 당시 부파교단에 반기를 들며, 출ㆍ재가를 떠나 모든 이들이 함께 열반언덕에 오른다는 일승사상(一乘思想)이다. 그러니 자신의 잣대로 원효를 지탄하며, 대승불교의 참 의미조차 흐리지 않았으면 본다.

둘째,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여기서 재 언급하고 싶다. 필자는 원효를 우리나라 역사상 최다의 저술가라고 본다. 원효의 저술로는 <화엄경소>ㆍ<금강삼매경론> 등 77부로서 현존하는 것은 23부이고, 온전히 남아있는 저술은 15부이다.

금강삼매경론은 중국 승려가 “이것은 보살의 경지에서만 나올 수 있는 저술이므로 당연히 논이란 명칭을 붙여야 한다”고 해서 ‘논(論)’이 되었다. 곧 원효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인물이 아니라 세계불교사의 보살이라는 점이다.

셋째, 중국의 선사들 가운데 그 당사자가 당대에 큰 선지식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곧 후대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들이 적지 않다. 적어도 원효는 그런 인물은 아니다.

몇 달 전, 우리나라 원로 사학자인 교수님께 필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불교사가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인물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교수님은 주저도 하지 않고 원효를 꼽았다. 이외 많은 분들의 발언이 있지만 생략한다. 원효라는 인물은 제자 혹은 어느 누군가에 의해 과대 포장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넷째, 필자가 원효를 존경하는 부분은 바로 이 점이다. 당시 귀족불교에서 탈피해 중생들에게 손을 뻗었다는 점이다. 무애박을 두드리며 저자거리와 천민들이 거주하는 촌락을 누비고 다니며 노래하고 춤을 췄다.

양반의 전유물로 여기던 불교를 노비와 서민층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평등의식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물론 당시 대안(大安)ㆍ혜숙(惠宿)ㆍ혜공(惠空)도 민중불교를 지향했다. 이런 원효였기에 화해(和解)와 회통(會通)의 논리체계인 화쟁(和諍)사상 등이 도출될 수 있었다고 본다.

다섯째, 자현스님이 비판한 화쟁에 대해 생각해보자. 자현스님은 원효가 살던 당시 시대상으로 통일국가에 필요했던 실천 없는 사상, 이치로는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뚜렷하지 않는 논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화쟁이라는 단어를 각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높은 관점이라는 말로 정의내릴 수 있는 말인가?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화쟁이란 단순히 원효의 학설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연기설(緣起說)로 깨달으시고, 제자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연기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요, 어느 누가 만든 것도 아니다. 이 법은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든 출현하지 않든 간에 항상 법계에 있는 것이다.”(잡아함 12권, 299 <연기법경>) 원효스님의 화쟁사상 또한 마찬가지라고 본다.

‘화쟁’은 단순히 사회 통합적인 언어가 아니라 바로 ‘중도(中道)’이면서 8정도의 ‘정도(正道)’이다. 또한 <유마경>의 핵심 사상인 ‘불이(不二)’ 사상으로 상대적ㆍ차별적인 인식이 아닌 절대적 경지인 불이문(不二門)이다.

또 <금강경>에서 궁극적 지혜를 표현한 ‘실상(實相)’이며(조계종표준본 금강경 14품 해석), <법화경> ‘방편품’에서 말하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원리( 이 단어는 선사들이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할 때, 단어로 쓰임)이다. 한편 황벽 희운(?~856)이 <전심법요>에서 밝힌 ‘무심(無心, 無住心)’의 경지이다. 분별심ㆍ차별심과 관념ㆍ집착을 여읜 무주심으로 절대 평등의 원리로서 화쟁과 같은 의미이다.

‘화쟁’이란 불자들이 도달해야 할 수행 목적지(열반ㆍ해탈)이기도 하지만,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상의 실천 방법론이기도 하다. 앞의 실상(實相)이란 단어는 불교의 핵심인 연기설과 같은 원리이다(후대로 오면서 분리해 쓰임). 부처님께서 깨달은 연기설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듯이 원효가 ‘화쟁’이라는 단어를 활용해 표현했을 뿐이지, 그것을 원효라는 인물의 독특한 사상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심오한 진리를 단지 언설로 표현한 그 단어에 국집해 그 말(화쟁)을 비판할 필요가 있는가? 곧 화쟁이라는 단어는 달을 가르치는 손가락에 불과한 것이거늘 ‘손가락에 문제가 있다’며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재 언급하지만 화쟁 사상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표현한 단어에 불과하다. 화쟁을 비판함은 경전과 조사들을 비판함이요, 한국불교ㆍ조계종의 정체성을 비난함과 같다고 본다.

여섯째, 자현스님은 ‘한국불교가 원효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면서 불교는 ‘원효가 아닌 부처님을 따르는 종교’라고 했는데, 향기로운 언어들의 집합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필자는 원효를 우리나라의 선지식 반열에서 배제할 수 없다. 자현스님과 필자의 코드가 맞지 않는 탓이리라!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예불하는 예불문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곧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아닌 인도ㆍ중국ㆍ한국에 이르는 보살ㆍ조사들에게까지 예를 올리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경(經)과 율(律) 이외 불교사에 족적을 남긴 보살과 조사들의 논(論)을 포함해 삼장(三藏)이라고 하듯이….

그러니 한국불자들은 원효의 망령에서 벗어날 필요조차 없다. 원효가 망령이라면, 1300여년이 넘는 동안 우리들은 망령을 섬긴 무지몽매한 자들이라는 말인가?!

진제 큰스님은 법문에서 “대지여우인막측(大智如愚人莫測)”이라고 했다. 큰스님이 말씀하신 의미가 있겠지만, 큰 지혜를 가진 이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람들이 감히 헤아릴 수 없다고 해석된다. 불교학이 어렵고 선사들의 어록이 어려운 것은 깨달음의 높은 경지를 (어리석은) 중생이 올려다보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흐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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