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정] 11월을 보내는 풍경 셋 
[수미산정] 11월을 보내는 풍경 셋 
  • 백학기 논설위원·시인·영화인
  • 승인 2019.12.03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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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전주 활동 김충순 형 떠나고
젊은날 흠모했던 윤정희 선생의 투병
늦은 가을 들려온 슬픈 소식에 애통

배우 신영균 선생 기부뉴스는 훈훈
마지막 남은 달력 보며 삶 의미 생각
백학기
백학기

12월이다. 소설(小雪)이 지났으니 얼마 있으면 대설(大雪)이다. 그래서인가. 한 해의 마지막 남은 달력이 의미심장하다. 해마다 맞는 한해의 마지막 달이지만 매년 새로운 데는 그만큼 이유가 있다. 

지난 11월의 내 페이스북 포스팅에는 치매로 프랑스 파리 요양원에서 지낸다는 윤정희 선생의 소식과 왕년의 배우 신영균 선생의 재산 500억원 기부, 그리고 고향 전주에서 활동한 선배 화가 김충순 형에 관한 소식을 전했다.

계절이 바뀌는 나날 들 속에서 가슴이 따뜻해져할 시기에 두 개의 섭섭한 소식을 전하는 안타까움 속에서도 한줄기 바람 같은 위로인 신영균 선생의 파격적인 행보는 그나마 큰 위안이 되었다고 할까. 

우선 파리의 윤정희 선생 이야기다. 그동안 영화계와 음악계에만 알려져 왔던 그녀의 알츠하이머 병 소식을 접하면서 어린 날부터 스크린에서 미모를 뽐내온 그녀가 설마 치매에 걸렸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유독 저려왔다. 여배우 윤정희가 누구인가. 1960년대 문희 남정임 등과 함께 여배우 3인방 트로이카 시대를 열면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대스타였다.

어린 날 아버지 손을 잡고 드나들던 영화관 스크린 위에는 언제나 윤정희라는 배우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지난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했을 때 보여준 연기와 미모는 바래지 않고 여전해 사뭇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그녀가 연기한 시 쓰는 역할은 존재감에 큰 의미를 더했다. 지금 생각해도 돈 때문에 김희라를 찾아가 그의 요청을 들어주는 정사 씬은 한동안 마음이 아리는 명장면이다.

윤정희 선생은 영화 ‘시’ 촬영 무렵부터 가끔씩 기억을 못하는 증상이 시작됐다고 전한다. 배우에게 대사 기억력이 얼마나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 오죽했을까. 윤정희 선생의 쾌유를 빈다.

지방 화단에서 활동해 ‘미나리’ 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불리던 화가 김충순 형의 투병 소식은 계절이 바뀌면서 마음을 더 황폐하게 만들었다. 암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면서 작업에 정진해 연말 인사동에서 개인전 준비를 했는데, 끝내 마치지 못하고 화필을 놓고 우리 곁을 떠났다.

고교 2년 선배인 그를 처음 만나던 때가 기억에 선명하다. 파리 유학에서 막 돌아와 검정 코트에 빨강 목도리를 하고 도심을 돌아다니던 ‘파리지엥’이었다. 나는 이중섭이나 박수근 선생 그림을 더 좋아했기에 독특한 화법으로 꽃과 여인을 줄기차게 그리던 그를 별나게 쳐다보았었다.

그러나 곧 밝고 화사한 톤의 꽃과 그림으로 우리 주변의 삶과 사물을 따뜻한 화폭으로 담는 그를 좋아하게 됐다. 몇 년 전 내가 쓴 시 ‘춘천여자’를 화폭에 옮겨 선물한 그림을 보며 떠난 형을 그린다. 작은 화폭 두 개로 나누어 꽃과 영화관과 여인과 고양이를 세필(細筆)과 점묘(點描)로 그려 따로 따로 놓아도 작품이 되고, 두 개를 나란히 붙여놓아도 작품이 되는 특별한 형식의 작품이다. 

왕년의 명배우 신영균 선생의 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500억원 기부 소식은 참으로 따뜻했다. 망백(望百)의 신영균 선생은 <빨간 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시리즈로 내 어린 날의 영화관 간판을 장식했었다. 충무로 명보극장 뿐만 아니라 제주도 서귀포의 신영 영화박물관을 건립하고 기부하는 등 우리 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인 그를 바라보며 돈과 명예를 새삼 되돌아 보게 됐다. 

한 해 마지막 한달을 남겨두고 돈과 명예, 존재와 가치를 넘어 서로에게 의미 있는 삶과 생애를 바라는 계절이다. 

[불교신문3540호/2019년12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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