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것들이 무리를 지어
이삭에서 조잘대는 걸 몰래
숨어서 보고 싶은 광경인데
하루하루 이삭이 익어가자
난 무슨 욕심을 냈던 걸까?

김양희
김양희

이틀 여행을 다녀온 사이 돌확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던 벼이삭이 왕겨만 앙상하게 남았다. 이삭은 끝에서부터 금빛으로 무르익어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자 했더니 알곡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누구 소행인지 일러주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분명 마당 주목에서 터를 잡고 살림하는 참새들이다. 그럴 줄 알았으면 허수아비라도 만들어 보초를 세워둘걸.

지난 5월 논에 모내기하며 모 열 포기를 가져와 돌확에 흙과 물을 채우고 심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모내기한 것이다. 마당에서 처음 짓는 농사에 자못 기대가 컸다. 벼가 쑥쑥 자라주길 바라며 아침마다 물 높이를 조절하였다. 날씨가 점점 뜨거워지자 벼는 제법 포기가 벌며 잘 자랐다. 논에 심은 벼보다 생장 속도는 느려도 그에 못지않게 튼실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월초에는 하얀 벼꽃이 층층 피었다. 알고 보니 그건 꽃이 아니라 수정이 끝난 수술이었다. 암술과 수술이 함께 들어 있는 벼는 왕겨의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온 수술에서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암술로 가 수정하는 동안을 꽃이 피었다고 한다. 이는 대략 맑은 날 오전 10부터 12시 사이 2시간 정도로 수정이 되면 바로 왕겨 문을 닫아 버리니 벼꽃을 보기가 무척 힘들다.

또 꽃은 사진을 찍어 확대해 봐야 할 만큼 작다. 꽃이 피는 순간을 보려면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실은 마당에 벼를 심은 까닭도 벼꽃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멀리 있으면 때맞춰 보기가 힘들다. 결국, 마당에 심어도 벼꽃에 대한 지식이 없어 꽃이 피는 걸 보지 못하고 말았다. 

이렇게 자란 벼이삭이 영글어 노릇노릇 익어가는 걸 만끽하고 있었는데 이틀 사이에 껍질만 남기고 알곡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애지중지하던 것이 한순간에 없어졌다는 사실에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빙긋 웃음이 났다. 그래 누가 먹으면 어떤가? 벼 열 포기 수확한 쌀로 밥을 해 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떡을 해 먹자고 한 적도 없다.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 보자고 심었는데 이삭이 익어가자 무슨 욕심을 냈던 걸까? 콩을 심어도 한 알은 새가 먹고 한 알은 벌레가 먹고 남은 한 알이 싹 트고 자라 열매 맺으면 사람이 먹는데 잠시 헛된 욕심으로 혼란스러워했다니. 

참새가 까먹는 장면을 떠올리면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만큼 예쁘지 않은가. 조그만 것들이 무리를 지어 이삭에서 조잘대는 걸 상상하면 몰래 숨어서 보고 싶은 광경인데. 고 조그만 부리는 수정할 때 열렸던 왕겨 문을 열어 알곡을 꺼내먹는 재미가 쏠쏠했을 거다. 아직 바싹 마르지 않아 씹는 재미도 톡톡했을 터이고. 쌀을 씹다 보면 달큼한 맛이 배어 나오는데 참새들 혀도 오랜만에 호강했겠다. 

벼는 또 오죽 행복했을까? 호미로 콤바인으로 사정없이 잘라내어 볏짚과 이삭으로 분리될 텐데, 줄기를 세워두고 알곡만 쏙쏙 까먹는 참새를 보며 참 흐뭇했을 거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을 거다. 아마 그 재잘거림에 귀가 즐거웠을 거다. 콕콕 쪼는 새 부리에 겨드랑이는 무척 간지러웠을 거다. 참새 무게에 줄기가 휘청거려도 함께 깔깔거렸을 거다.

날마다 지나가며 인사를 하는 참새와 벼가 미리 약속했을지도 모른다. 내 귀에도 알곡을 까먹으며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내 겨드랑이도 참새 부리가 쪼아대는지 간지럽다. 

내년에도 마당 돌확에 벼를 심겠다. 얼마쯤 늘려 볼 생각도 한다. 그리곤 벼의 생장 과정과 꽃이 피는 걸 놓치지 않고 꼭 봐야겠다. 나는 단지 보는 즐거움만 느끼고, 이삭이 노릇노릇 맛있게 익으면 참새 까먹으라고 일부러 며칠 마당을 비워두겠다. 

[불교신문3540호/2019년12월4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