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어머니 성품을 닮아
척박한 땅에서도 씨앗을 품어 키운다
태풍이 쓸고 간 자리에도
돌틈 비좁은 단칸방에서도
자식들을 키 세워 내세운다
세상살이 분간 못할 막막함에도
제 살을 헐어서 바깥을 거두어 품는다

-김정운 시 ‘흙’에서
 


흙은 부드럽고 인자하다. 씨앗을 제 가슴 한복판에 가만히 품어 생명을 움트게 한다. 제 살로 이랑과 고랑을 만들어 한 생명이 뿌리를 내리게 하고, 의지해서 자라게 한다. 제 안쪽의 것으로써 바깥을 보양(保養)한다. 태풍이 지나간, 폐허가 된 곳에서도 새 생명을 기른다. 돌과 돌의 틈새 같은, 가난한 단칸방에서도 어머니가 자식을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보살피듯이. 

김정운 시인의 신작 시집 ‘저물도록 색칠만 하였네’를 읽으니 불심(佛心)이 향기롭다. 시 ‘동안거’에서 “고요가 깊으면 적막// 적막은// 귀가 깊고 넓어// 모든 소리를 다스린다”라고 노래했다. 원만하고 서로 막히는 데가 없는 것을 바라보는 시심이 그윽하다. 

[불교신문3539호/2019년11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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