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42> 설일체유부 - 대념처경의 법념처와 구사의 법념주
[등현스님의 초기불교에서 禪까지] <42> 설일체유부 - 대념처경의 법념처와 구사의 법념주
  • 등현스님 고운사 화엄승가대학원장
  • 승인 2019.11.30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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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미움 있다면 고통 지속

사띠 통해 수상행 가라앉히고
오온의 무상 고 무아 공 관해
여섯 가지 감각기관 단속해야
등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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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념처경>의 법념처 수행은 몸과 마음의 행복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심리적 장애(五章)에 대한 알아차림으로 시작된다. 오장은 음욕, 진심, 혼침과 무기력, 들뜸과 후회, 의심 등이다.

음욕은 부정관으로 다스리고, 진심은 자애관, 혼침과 무기력은 광명상과 살핌으로, 들뜸과 후회는 수식관으로, 의심은 법에 대한 관찰로 다스린다. 법에 대한 관찰은 앞에 말한 18계의 무상, 고, 공, 무아를 관하는 것이다. 이들의 본질은 주로 사혜(思慧)이고 그 결과로 삼매를 성취하게 된다. 이제 수혜(修慧)를 통한 위빠사나의 법념처를 논해 보자. 

느낌(受) 생각(想) 욕망(行)은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임과 동시에 윤회의 고통 속에 태어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수상행을 가라앉혀 청정한 아는 마음과 분리하고, 수상행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따라가며 바라보는 것을 ‘사띠’라고 한다. 이 사띠의 수행은 오염된 감성들의 발생과 사라짐, 사라지고 다시 일어나지 않음을 지켜보는 것이다.

지켜보는 것의 기능은 분리이다. 아는 마음과 알려진 대상의 철저한 분리인 것이다. 시비 분별을 하게 하는 것은 알려진 대상(심소)의 기능이고, 그것에 집중하게 되면 다시 고락의 업에 떨어지기 때문에 대상을 지켜보고 분리하되, 생하고 멸하는 것을 바라봐서 알아야 하는 것이다(sati sampajaa).

이것을 무상을 관한다고 하고 이 생멸하는 것에 대하여 ‘생할 때 사라지기를, 멸할 때 생하기를’ 바라면 에너지의 충돌이 발생하고 이를 고통이라고 한다. 생하고 멸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의 속성이며 다만 인연 따라 생멸이 나타날 뿐이고, 인연을 벗어난 실재가 없음을 알게 되면 그것이 바로 무아이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해 오장이 다스려지면 6종 선정 중의 하나를 경험한다. 위빠사나 수행자에게는 찰라 삼매, 사마타 수행자에게는 5선중의 하나인 몰입 삼매이다.

6종 선정 중의 하나에서 오온을 바라보면 몸을 구성하는 지수화풍의 생과 멸, 지수화풍 4대로 이루어진 몸의 생과 멸, 또한 4대로 이루어진 물질적 대상의 생과 멸, 이들의 접촉에 의한 느낌(수)의 생과 멸, 그러한 느낌을 이로움과 해로움으로 분별하고, 옳다 그르다고 판단함의 생과 멸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서 안다. 좋은 느낌이나 이롭다고 판단한 대상에 대하여 욕구가 발생하면 발생임을 알아차리고, 사라지면 사라짐을 알아차린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아는 식이 발생하면 발생함, 사라지면 사라짐이라 봐서 알아차린다. 만일 이 생멸하는 상태를 보고, 생할 때 사라지기를 바라고, 멸할 때 생하기를 바라면 에너지의 충돌이 발생하고 이를 고통이라고 한다.

생하고 멸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의 속성이며 다만 인연 따라 생멸이 나타날 뿐이고, 인연을 벗어난 실재가 없음을 알게 되면 그것이 바로 무아이다. 이처럼 이 오온의 안과 밖, 그 어디에도 실재하는 나가 없다는 것을 보면 유신견이 사라지게 된다. 오온이 스스로 존재하지 않음을 보면 무아이고, 대상이 스스로 존재함이 없음을 보면 공이 된다.

이와 같이 오온의 생멸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며 지켜보아 무상, 고, 무아, 공을 아는 것이 바로 오온을 법으로 관하는 것이라 한다. 법이라 하는 이유는 심소를 바라보기 때문이고, 심념처에서 마음만 바라보는 것에 대비해서 법념처인 것이다. 

이처럼 오온을 관하는 것은 자아의 본질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보고 알았다 해도 삶의 고통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감정적 상태인 사랑과 미움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이 사랑과 미움의 대상은 주로 밖에 있고, 이들은 6가지 감각 기관을 타고 흘러 들어오기 때문에 감각 기관을 잘 단속해야 한다. 그것을 12처와 18계를 관하는 것이라 한다.

눈이 대상을 볼 때 그것을 지켜보고, 귀가 대상을 들을 때 그것을 지켜본다. 코가 냄새를, 혀가 맛을, 몸이 촉감을 경험할 때도 역시 지켜보아야 한다. 마음은 이것들을 지켜보고 알지만 이들은 마음을 알지 못하고, 마음은 이들이 개념이고 비실재임을 알아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은 공하다고 한다. 이러한 오장, 오온, 12처와 18계를 관하여 사띠가 계발되어지는 과정을 7각지라 하고, 그 결과로 4성제에 대한 깨달음이 발생하는 것이다.

[불교신문3539호/2019년11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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