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쓰는 화두 ‘한국불교’] <68> 불교계 ‘86세대’를 생각한다 - (上)지나온 역사와 현재
[함께 쓰는 화두 ‘한국불교’] <68> 불교계 ‘86세대’를 생각한다 - (上)지나온 역사와 현재
  • 박부영 상임논설위원
  • 승인 2019.12.0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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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화 흐름 속 불교개혁·종단 변화 이끈 30년

‘사원화 운동’ 몸담았던 1980년대 불교 ‘86세대’
1994년 종단개혁 주역, 10여년 종단 혁신 주도

정치권에서 ‘86세대’ 퇴진론을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386세대’라 불리는, 1960년대 생으로 1980년대 학교를 다닌 30대를 일러 언론에서 지은 작명이다. 처음 이름 붙이던 때가 20년 전이니 이제 50대가 되었다. 그래서 586세대라고도 부른다. 이들이 갑자기 언론에 호출된 것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서울대 로스쿨 교수며 현 정부 초대 민정수석으로 많은 지지자를 거느린 조국 전 장관은 86세대의 대표 인물과 같았다. ‘86세대’가 특별히 언급되는 배경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만든 주역이기 때문이다.

1994년 4월6일 조계사에서 열린 ‘3·29법난 규탄과 종단개혁을 위한 범불교도대회’가 열렸다. ‘94년 종단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재야와 제도권, 원로 스님까지 종단 민주화와 자주화의 원력 아래 뭉쳤기 때문이다. 사진은 스님들을 도와 개혁에 동참한 재가불자들.
1994년 4월6일 조계사에서 열린 ‘3·29법난 규탄과 종단개혁을 위한 범불교도대회’가 열렸다. ‘94년 종단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재야와 제도권, 원로 스님까지 종단 민주화와 자주화의 원력 아래 뭉쳤기 때문이다. 사진은 스님들을 도와 개혁에 동참한 재가불자들.

‘조국사태’가 불러낸 86세대 공방

1960년대 한일수교를 반대한 ‘68세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유신에 반대한 ‘긴급조치세대’도 있고 그 후의 x세대, 밀레니엄 세대 등 다양한 세대명이 붙었지만 86세대가 세대를 대표하며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은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일하게 정권을 상대로 싸워 승리하고 젊은 나이에 정치권에 발을 붙여 30여 년 째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정치권 뿐만 아니라 기업 시민사회 노동조합 등에서도 이 세대들은 특유의 조직력과 추진력으로 오랫동안 권한을 독점했다. 

그만큼 반발도 많다. 특히 한 세대 이후인 20~30대 청년들의 거부감이 강하다. 민주화를 쟁취했다는 이유로 기득권을 독점하고 오랫동안 누린다는 비판이 많이 나온다. 조국 전 장관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비판을 받는 것도 86세대에 대한 거부감이 한 몫 했다. 

정치권에서 86세대 퇴진론이 거세게 부는 배경이다. 한 야당 국회의원은 86세대가 물러나고 1970년대 생이며 90년대 대학을 다닌 97세대가 나서야 한다는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오는가 하면 같은 86세대 안에서도 동반 퇴진론이 터져 나왔다. 분명한 것은 한 세대가 이처럼 오랫동안 한국사회를 주도하고 여론을 흔드는 것은 이들이 유일하다는 사실이다. 한 세대가 30대 초반에 권력을 쥐고 30년 간 현역에서 활동하는 현실은 분명 특이하다. 

불교계 역시 86세대의 존재는 특별하다. 정치권이나 사회의 86세대와 불교계 86세대는 성장배경 문화 학창시절 민주화 경험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같다. 몸담고 있는 영역이 불교일 뿐 모든 면에서 같다고 보면 된다. 

서울 지역의 대학을 다니며 1980년대 학생운동에 몸 담고 1984년 민정당사 점거농성, 1985년 인천 사태, 1986년 건국대 사태, 1987년 직선제 개정 등에 이르는 대학가 민주화 여정을 함께 걸었던 이들이다. 정치권이나 시민운동이 아닌 불교를 택했다는 영역만 다를 뿐이다. 청와대나 민주당 혹은 자유한국당 등 정당에서 활동하는 과거 ‘운동권 동지’들이 적지 않다. 

물론 불교가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약하기 때문에 불교계 86세대의 영향력 역시 정치나 사회에 진출한 동세대에 비해 떨어진다. 불교계는 그리고 86세대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이유는 종교 특성상 출가 성직자를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 불교계는 1980년 10·27 법난과 함께 시작됐다.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 10월27일 총무원장 중앙종회의원 원로 스님들을 강제연행하고 고문을 자행하여 재산을 강제로 빼앗고 언론을 통해 파렴치범으로 낙인찍었다. 그리고 10월31일 계엄군을 동원해 전국 사찰을 침탈하여 스님과 재가자들을 강제연행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국가가 특정종교를 적으로 삼아 무력을 일삼은 전대미문의 훼불이었다. 

10·27 법난이 일깨운 청년불자 

10·27 법난은 젊은 승·재가를 일깨웠다. 1970년대까지 스님과 재가자들은 산에서 수행하는 선수행을 최대의 목표로 삼았다. 1950년대 정화 목표가 ‘마음 껏 참선 수행하는 분위기 조성’이었던 까닭에 선수행은 오랫동안 한국불교, 특히 조계종의 지고지순한 지향이었다. 그리고 조계종은 정권에 큰 빚을 지고 있었다.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대처승에 비해 수가 현저히 부족했던 비구승을 정치적으로 지원하여 비구종단을 창종하고 유지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사회와 떨어져 깨달음을 추구하며 정권에 우호적이던 결과가 불교탄압으로 이어지는 광경을 목격한 젊은 승·재가는 국민과 함께 하지 않는 종교는 정치적으로 약자며 결국 소멸할 수 밖에 없음을 체험했다. 이후 도심포교당 운동이 벌어지고 정치민주화에 적극 나섰다. 1970년대 법정스님 홀로 글로 정권에 저항하던 반정부 인사가 1980년대는 동국대 재학생과 중앙승가대학을 중심으로 조직을 결성할 정도로 급속하게 늘어났다.

10·27 법난 후 서울의 각 대학 불교학생회원 중 일부가 사찰을 민중운동의 근거지로 삼는 베트남식 불교운동을 조직했다. 서울의 법련사 칠보사 청룡암 묘각사 등에서 서울대 동국대 고려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서울의 몇 몇 대학생 불자들이 모임을 만들어 사회과학을 공부하다 적발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원화 운동이라고 불리는 모임이었다. 사원화 운동은 공안당국에 의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되며 와해되었지만 이후 1980년대 중반 다시 재건돼 1980년대 불교운동의 자양분이 된다. 불교계 86세대라 불리는 이들의 주력이 사원화 운동과 직간접 연결돼 있다. 

1986년 말 건국대 사태 이후 학생운동이 지하 운동에서 대중운동으로 전환하면서 지하 서클 경향을 띠던 사원화 운동도 대중운동으로 전환한다. 청년 불자들이 졸업 후 주로 활동하던 성남의 노동운동에 몸을 담거나 공개조직인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등으로 ‘이전’하면서 1980년대 10·27 법난으로 일어났던 사원화 운동은 막을 내린다. 

1980년대 사회민주화 헌신 

헤어졌던 이들은 1994년 종단개혁을 계기로 종단에 대거 진입하며 다시 모였다. 학생운동 불교운동 노동운동을 거친 진보적 청년불자들이 대거 종단 종무원으로 들어오자 보수적인 스님들 사이에서는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부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헌신적이며 저돌적인 청년불자들은 스님들과 함께 종단개혁의 주역으로 자리잡았다. 대기업이나 정치지도자로 발돋움 할 수 있는 학력과 자질을 갖추었지만 대학생 시절부터 꿈꿨던, 중생과 함께 하는 진보적 종단을 만드는데 일조한다는 자부심으로 무장한 이들은 종단을 바꾸고 스님들 잔심부름꾼에 불과한 재가 종무원상을 바꾸었다. 불교계 ‘86세대’이 걸어온 역사다. 

출가자 86세대도 있다. 출재가 구분만 다를 뿐 걸어온 경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80년대 동국대학교나 중앙승가대학을 다닌 스님들이다. 1980년 광주를 직간접 경험하고 10·27 법난에 분노한 젊은 출가자들은 대학생불자들과 사회과학을 공부하며 사회 현실에 눈뜨고 불교개혁과 사회민주화가 둘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1994년 종단 개혁을 주도하고 이후 종단 주역으로 자리잡았다. 

불교계 86세대의 최전성기는 1998년 종단개혁이 도전에 직면하던 당시와 그 후 몇 년이었다. 1994년 비구니 스님과 재가자들에게 많은 의지를 했던 종단개혁은 비구승 중심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1998년 개혁에 소외됐던 스님들에 의해 종단이 위협을 받자 다시 재가자들의 힘을 빌린다. 이후 재가 종무원들은 막강한 힘과 추진력으로 종단을 주도했다. 

그러나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제도개혁으로 중앙조직이 커지고 예산이 늘어나자 더 많은 인력이 들어왔다. 종단을 일군 주인이라고 자부하던 86세대와 달리 새 인력은 행정직원 역할에 충실했다. 종단을 바라보는 입장, 일처리 방식, 스님과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많이 달랐다.

‘86세대’는 규정만 들여다보며 공무원처럼 구는 후배가 못마땅했고, 후배들은 무엇이든 의미를 부여하며 거창하게 접근하는 선배들이 정치적으로 보였다. 후배들이 팀장급으로 성장하고 종단이 ‘활동가’보다 ‘관료’를 요구할 정도로 조직이 안정되고 행정처리가 많아지면서 86세대는 소수파로 밀려났다. 

후배들에 밀린 불교 86세대

중앙종무기관 종무원들 사이에서 총무원 2층과 3층은 한 계단 이상으로 먼 거리다. 총무부 기획실 재무부 호법부 문화부가 자리한 3층은 중앙종무기관의 핵심 부서로 꼽힌다. 예산 인력 영향력 면에서 중앙종무기관 핵심이다. 이 부서를 이끄는 차 팀장들은 2000년대 종단이 안정된 후 들어온, 86세대의 후배들이다. 

2층에 자리한 포교원 교육원은 3층에 비해 한직으로 분류된다. 업무의 중요성과 상관없이 종무원들은 2층을 기피한다. 86세대의 상당수가 2층이나 외곽의 위원회에 근무한다. 올해 종단의 가장 큰 이슈였던 조계종 노조를 만들고 이끄는 이들이 바로 양원(兩院)의 ‘86세대’들이다. 

불교계 86세대는 중앙종무기관 밖에서도 활동한다. 그들 역시 2000년대 초 중반까지 중앙종무기관에서 종무원으로 근무했다가 불교시민사회 단체 등에 몸담으며 활동한다. 

퇴진론이 불거지는 정치권 86세대처럼 불교계도 이제 86세대는 저무는가? 아니면 다른 역할이 기다리고 있는가? 

[불교신문3539호/2019년11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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