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구하고자할 땐
위로 오르면 되고
자비를 실천하고자할 땐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11월의 나무처럼 겨울과
다가 올 새봄을 위해
잡다한 욕망의 잎 새부터
죄다 털어버려야겠다

조철규
조철규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속박 없이 자유롭게 살기를 누구나 바라고 있다.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면 불어오는 바람에 자신이 수시로 흔들리는 모양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외려 힘들고 외로운 일이면 고개를 바짝 세우고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마을길을 지나다가 산 아래에 있는 돈사(豚舍)를 본 적이 있다. 쇠창살 사이로 오글거리며 어미 젓을 빨고 있는 새끼 돼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열악한 환경에서 번식과 육질만을 제공하기 위해 사육되고 있는 어미 돼지와 새끼 돼지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

존귀한 생명마저 인간의 먹거리로 쓰기 위해 길러지고 있는 생명이 상품이라고 생각하면 괜한 슬픔이 일었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뭐가 그리 저와 다르겠는가. 나 역시 생로병사(生老病死)에 거스를 수 없는 일생을 코뚜레에 매인 소처럼 숙명에 맡겨져 있다.

사람이 돼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고(思考)할 수 있는 존재로 지혜가 있다는 점뿐이다. 그래서 마음만은 깨어 있어야 한다. 그 마음이 깨어 있어야 고통도 느끼고 또 그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도 하게 된다. 즉 생명의 고통에 공감하고 상대의 괴로움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우리를 서로 감싸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고통의 늪에서 허덕이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공전하여 반복되고 있다. 현실은 언제나 절망적이고 자신의 노력이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하지만 눈을 들어 보라.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 있고 산은 우리 주위를 말없이 감싸고 있다, 

우리는 그 산줄기의 흐름에 몸을 맡겨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산들이 흐르고 있는 산맥은 끊어진 데가 없다. 그 산의 줄기를 타고 가면 수백 수천 킬로미터도 갈 수 있고, 지구촌 어디든 가 닿을 수 있다. 그 길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경우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지혜를 구하고자할 땐 위로 오르면 되고 자비를 실천하고자할 땐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자할 땐 낮은 곳으로 더 낮게 몸을 낮추면 된다. 각행원만(覺行圓滿)이다. 

자연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자유롭게 가야 한다. 그 길에서 우리는 ‘은산철벽(銀山鐵壁)도 뚫을 수 있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進一步) 하라’ ‘성취할 수 있다’ 저마다 다른 개성과 생각을 지니고 있는 생명이면서 동시에 하나로 이어진 존재들이다. 만물의 존재 하나하나가 어디 나 홀로 생기고 없어지는 이치가 없다. 전체가 서로 연관 지어지고 관련된 구조 속에서 형성되고 살아가는 철리(哲理)가 있다. 

나는 산이 많은 산악국가에서 살았다. 산줄기에 기댄 집들이 산을 닮아 있었다. 그 산을 보고 나는 산을 찾아다니며 사람과 산의 이야기가 담긴 산행문학관의 필요성을 가진 적이 있다. 그것도 40년 전의 일로 1970년대적 일이다. 결코 서둘지 않았고 산의 마음처럼 꿈을 간직해왔다. 그런 연유로 1980년대에 부지를 매입해둔 채 지금까지 그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제는 11월의 나무처럼 겨울과 다가올 새봄을 준비하기 위한 작업으로 잡다한 욕망의 잎 새부터 죄다 털어버려야겠다. 그리고 땅의 기운으로 지은 흙의 집, 숲의 기운으로 지은 나무의 집, 바람의 기운으로 지은 바람의 집, 물소리가 들리며 물의 기운으로 지은 물의 집, 재래식구들장을 앉혀 불의 기운을 받을 수 있는 불의 집을 음양오행태극생기터(陰陽五行太極生起處)라고 하는 명기처(明氣處)에 집을 짓고 사람과 산의 이야기를 담아내야겠다. 해서 우주와 자연의 이치로 살아가는 혜택을 나누고 싶다.

11월은 생각이 깊다.

[불교신문3538호/2019년11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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