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사유화ㆍ세속화 되는 선학원 ①

왜색불교에 대한 저항 기치로
조계종 스님ㆍ사찰 재산 출연
선학원 설립 깊이 관여했지만
사실 외면하며 종단 관계 부정
이사회의 사유화 의혹 깊어져

수덕사, 범어사, 직지사 등의 출연 재산 등으로 설립된 재단법인 선학원이 종단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사유화, 세속화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역사 바꾸기는 물론 법인 형식을 이용한 자의적 정관 개정, 조계종 소속을 계속해서 유지하려는 분원과 스님에 대한 노골적 압박 등을 통해 종단으로부터 분리를 시도하면서 선학원 이사회가 사찰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선학원은 조계종과 법인 설립의 모태가 다르고 설립 시기도 앞서 궤를 달리한다 주장하지만 종단과 ‘한 뿌리’라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왜색불교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불교정화운동의 한 축이 됐던 선학원 설립 정신과 종단과의 관계가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 살핀다.
 

수덕사 말사인 정혜사와 간월암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선학원에 대한 항의 표시로 덕숭총림 선학원대책위원회 스님들이 2014년 3월19일 선학원을 항의 방문했다. 선학원이 건물 입구를 막자 수덕사 스님들은 ‘누구 맘대로 종단 탈퇴, 만공선사 대성통곡’ 등 항의 피켓을 들고 현관 앞 계단에 앉아 시위를 이어갔다.불교신문
수덕사 말사인 정혜사와 간월암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선학원에 대한 항의 표시로 덕숭총림 선학원대책위원회 스님들이 2014년 3월19일 선학원을 항의 방문했다. 선학원이 건물 입구를 막자 수덕사 스님들은 ‘누구 맘대로 종단 탈퇴, 만공선사 대성통곡’ 등 항의 피켓을 들고 현관 앞 계단에 앉아 시위를 이어갔다. ⓒ불교신문

재단법인 선학원이 지난해 설립 100주년을 맞아 건립한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 내부를 들여다보면 만공스님 흔적을 찾기 어렵다. 기념관 입구부터 내부에 이르기까지 만해스님 동상과 훈장, 일대기로 가득하다.

입구에 새겨진 글귀에는 “1921년 11월30일 남전스님 도봉스님 석두스님 등이 만해스님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민족불교의 왜색화, 세속화를 막고 사찰령을 철폐해 한국불교의 정맥을 수호하고 계승하기 위해 선학원을 설립했다”고 쓰여 있다. 선학원 주장대로라면 선학원 설립 주역은 만해스님이 된다. 선학원은 여기에 해마다 추모제, 추모예술제 등 만해스님 선양사업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선학원 설립 조사를 만해스님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엄밀히 말해 만해스님은 선학원 설립에 관여하지 않았다. 선학원은 1921년 8월10일 공사를 시작해 그 해 11월30일 준공됐다. 당시 만해스님은 1919년 3·1운동으로 수감돼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1921년 12월22일 출옥했다. 선학원 설립을 준비하고 창건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 묶인 몸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선학원은 설립 조사로 만해스님을 독보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선학원 설립에 깊이 관여했던 만공스님 등 조계종 스님과 사찰에 대한 흔적 지우기를 통해 사실상 탈종을 시도, 이사회가 조계종과의 연관성을 지우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조계종 교구본사를 대표하는 스님들이 선학원 설립에 깊이 관여했던 것은 역사를 통해 나타난다. 선학원 창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21년. 범어사 포교당 포교사 남전(南泉)스님, 석왕사 포교당 포교사 도봉스님 등은 도회지에 포교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고 여기에 당시 수덕사 선승이었던 만공스님, 범어사 주지 성월스님, 용성스님 등이 이를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1921년 5월15일 이들은 석왕사 포교당에서 선학원 건립 비용을 모금하기 위한 보살계 계단을 개최, 본격적 설립 준비에 들어간다.

이 때 회의를 주관한 만공스님 발언에서 선학원 설립의 바탕을 찾을 수 있다. 만공스님은 “지금 조선불교는 총독 허가 없이는 절간에 있는 온갖 재산, 기물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손을 댈 수 없게 돼 있고 조선 중들은 자꾸 일본 중처럼 변질돼 가고 있다”며 “사찰령과 관계없는 순전히 조선사람끼리만 운영하는 선방을 하나 따로 만들어 보자”고 했다. 만공스님 발언에 공감한 스님과 신도들은 개인 자금을 내놨다. 성월스님이 범어사 포교당을 처분, 설립 기금을 보탠 것도 이 때다. 

만공스님이 선학원 설립에 깊이 관여했다는 건 기록에서 더 뚜렷이 나타난다. 선학원 상량문(1921년 10월4일)은 ‘백용성, 오성월, 송만공, 강도봉, 김석두…’ 순으로 창건을 주도했던 인물들을 나열하고 있으며 이후 선학원의 창립 정신을 구현해 나갈 조직체인 ‘선우공제회’ 결성 과정과 운영에도 만공스님 기여도가 언급돼 있다.

‘선우공제회창립회의록’에 따르면 1922년 3월30일부터 4월1일까지 선학원에서 창립총회가 개최됐고, 학명스님, 성월스님, 만공스님 등 35명의 스님이 출석했다. 당시 서무, 재무, 수도부 세 곳의 중앙조직 중 첫 수도부 수장을 맡은 것도 만공스님이었다. 만공스님은 선학원 창건 후 초기 재정이 어렵자 정혜사 토지 6173평을 기부하기도 했다. 역사에는 만공스님 헌신과 주도가 분명히 기록돼 있다. 만해스님은 포함돼 있지 않다.

이를 애써 외면하려는 듯한 선학원 행태는 끊임없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선학원이 수덕사 말사인 간월암과 정혜사 소유권을 두고 법적 공방을 벌이면서 의도적으로 수덕사를 중창한 만공스님을 깎아내리려는 동시에 조계종과의 법인관리법 갈등에서 벗어나 사찰을 사유화하기 위한 역사 바꾸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광식 만해학회장은 “선학원의 창건과 운영, 재건과 정체성 구현 등에 있어서 만공스님이 선학원 역사의 분명한 주역임에도 만해스님을 중심으로 역사를 재창조하려는 선학원의 움직임은 심히 우려스럽다”며 “선학원을 위해서라도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만공스님을 제대로 조명하지 않는다면 선학원 선양 사업은 의도적으로 편의에 의해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불교신문3537호/2019년11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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