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안거’ 수좌가 돌아본
인생과 세상의 의미
연꽃마을 30주년 앞두고
불교사회복지 발전 ‘서원’

토굴가

원상스님 지음 / 조계종출판사

“제가 살아오면서 늘 판단을 잘못하여 고생스럽게 사는데, 두 가지 판단은 잘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젊은 날 출가한 것이고, 둘째는 선방 수좌가 된 것입니다.”

수행(修行)은 오로지 자기만의 공부이고 사투이다. 아무도 대신 깨달아줄 수 없다. 그래서인지 때때로 선방에서 만나는 수좌(首座) 스님들의 얼굴엔 고독의 기운이 완연하다. 형태와 미추(美醜)는 제각각이더라도, 어쨌든 왠지 말라있고 서늘하다. 오랫동안 수좌로 살아온 원상스님이 책을 펴냈다.

<토굴가 - 미소를 부르는 작은 깨달음>은 삶 속에서 겪은 여러 일화들과 그에 대한 소소한 감상이 주를 이룬다. 짧으면서도 날카로운 글들이 많다.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스님은 표정이 적고 말투는 굳은 편이다. 뭐 하나 허투루 지나치지 못하는 책 속의 감수성과는 자못 대조적이다. 인생과 세상에 대해 섣불리 넘겨짚지 않는 문제의식의 조심스러운 외연으로도 보인다. 원상스님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처음 부처님을 믿게 됐다.

열아홉 살 때 집을 떠나 삭발염의(削髮染衣)했고, 속리산 법주사 행자실의 막내로서 삶의 새로운 시작점에 섰다. 어려운 고비들을 넘으며 사미계를 받았다. 스님으로서 인간으로서 응당 겪어야 하고 반드시 타고 넘어야 하는 순간순간들이 책에 담겼다.

“코가 매울 정도로 추운 겨울 새벽, 맑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과 초닷새 달을 바라보는 맛. 인적 드문 오솔길을, 걷는다는 생각마저 내려놓은 채 걷는 일. 열심히 정진하는 스님을 문밖에서 바라보는 것. 밀짚모자에 걸망 하나 지고 길 위에 서 있는 사람, 작은 것에 안주하지 않고 홀로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 고독하지만 다가가 젖고 싶은 새벽안개처럼 신비스러운 자태, 그 시절 나에게 아름다움이란 말없이 서 있는 수행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은 불교계 사회복지의 대부 각현스님(1944~2014)을 이어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의 4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본인에겐 ‘대표이사’라는 자리가 평생 동안 영예가 아닌 책임으로 자리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외로움과 아픔을 묵묵히 감내하고 보살피겠다는 의지와 내공이 서린 문장들을 통해서다.
 

11월18일 기자간담회에서 저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연꽃마을 대표이사 원상스님.
11월18일 기자간담회에서 저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연꽃마을 대표이사 원상스님.

연꽃마을은 내년(2020년) 설립 30주년을 맞는다. 사실 저자는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오직 연꽃마을의 영원한 ‘건재’를 위해 출간을 했고 기자들 앞에 나왔다. 30년 전 덕산당 각현스님은 ‘마을마다 연꽃마을, 마음마다 연꽃마음’이라는 구호로 전국을 누비면서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의 기틀을 만들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불교계에 복지의 개념과 실천을 심었다. 법인 소속 시설들은 전국 70여 개이며, 정부 평가에서 상위 5퍼센트 안에 드는 우수기관으로 타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이제 원상스님이 이끄는 연꽃마을은 각현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법인 1호 시설이었던 용인 전문요양원에 각현스님 기념관과 사리탑을 조성하며 백년대계를 기획하고 있다. 책에서도 은사에 대한 절절한 존경심이 곳곳에서 내뿜어진다.  

원상스님은 1986년 제5교구본사 속리산 법주사에서 각현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89년 비구계를 수지하고 법주사 승가대학과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했다. 앞서 밝혔듯 1993년부터 2019년까지 마곡사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봉암사 법주사 대승사 등에서 33안거를 성만한 수좌다. 지난 1월에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대표이사를 “문중 어른들이 떠밀어서 맡은” 것처럼, 책도 연꽃마을 때문에 떠밀리듯 나왔다. 그래도 읽을 만한 구절은 적지 않다. 도반들과 함께 수행을 이루어가는 모습들이 유쾌하게 그려졌다. 스물아홉 살 때, 토굴에 들어가 살면서 두 해를 같이 보낸 85세 할머니와 아옹다옹하면서도 서로를 보살핀 사연도 울리는 바가 크다.

“지금 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괴로우십니까? 또 무엇 때문에 행복하십니까? 고(苦)와 락(樂)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한 몸의 두 얼굴입니다. 돈 때문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사랑 때문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우리는 동전의 앞면에 집착할수록 뒷면의 그림자가 커지는 이상한 숙명을 갖고 있습니다.(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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