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수행 주제로 한
10년에 걸친 편지글 모음
“자기 속의 오만 못 버리면
절대로 부처님 만날 수 없어”

깨져야 깨친다

박성배 황경열 지음 / 예문서원

“황경열 교수님, 사과는 어디서나 떨어집니다. 그러나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사람은 뉴턴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내 속에 화두가 있어야 합니다. 화두가 있으면 화두를 풀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게 마련입니다. 사과는 항상 떨어지고 만유인력도 항상 거기에 있었건만 화두가 없는 사람에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공부는 자기에게 매였습니다. 진정 공부하는 사람에겐 천하만물이 다 스승입니다. 교만에 빠지지 말고 항상 겸손해야 하는 것밖에 비결은 없습니다.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은 숨을 쉽니다. 사람에게 숨이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공부는 숨 쉬는 것과 똑같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도 맨 먼저 다시 하는 일이 숨 쉬는 일이듯, 공부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박성배 합장(225쪽).”

<깨져야 깨친다 - 불교학자 박성배 교수와 제자 심리학자 황경열 교수의 편지글>은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를 지낸 박성배 재미(在美) 불교학자와 제자인 황경열 대구대 재활심리학과 교수가 불교와 수행에 대해 주고받는 편지를 모은 책이다. 외형상으로는 편지글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실상 박성배 교수의 불교사상을 정리했다.

성철스님의 상좌로 출가의 길을 걸었던 박성배 교수는 그동안 세계 학계에서 활동하면서 한국 불교학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1980년부터 미국 뉴욕주립대학교를 기점으로 ‘한국학 운동’을 전개했고, 뉴욕주지사 문화상을 수상함으로써 그 업적을 인정받기도 했다.

공동저자인 황경열 교수는 2000년에 처음 뉴욕주립대학교 방문교수로 그곳에 갔다가 한국학 교수 세미나에서 박성배 교수의 사상에 감화 받았다. 그 후 1년 동안 박성배 교수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10여 년에 걸쳐 전화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돈독한 관계를 이어왔다. 책에는 스승과 제자가 불교를 가르치고 배우며 쌓아올린 성장의 흔적이 뚜렷이 나타난다.
 

'깨져야 깨친다 - 불교학자 박성배 교수와 제자 심리학자 황경열 교수의 편지글'에는 불교와 수행에 대한 학자들의 치열한 정진이야기가 담겨 있다.
'깨져야 깨친다 - 불교학자 박성배 교수와 제자 심리학자 황경열 교수의 편지글'에는 불교와 수행에 대한 학자들의 치열한 정진이야기가 담겨 있다.

2003년 4월에 오고간 편지를 보자. 제자는 여름방학 중에 나태해진 것 같다며 어떻게 하는 것이 진짜 공부인지 혼란스럽다고 토로한다. 전보다 화를 많이 내고 여기저기 끌려 다니는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이에 대해 스승은 화내고 게으름 피우는 것을 탓하지 말고 토닥인다. 생명의 자연스러운 질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혼란스러운 것은 공부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다.

좁은 자아 속에 부처님의 거대한 세계를 담으려니 혼란이 없을 수 없다. 혼란이 없고 공부가 잘 된다는 것은 기존의 아상(我相)만을 더 단단히 하는 착각이자 헛수고다. 궁극적 목표는 혼란에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말고 아상을 뿌리째 폭파시키는 데에 있다.    

책을 흐르는 일관된 줄기는 결국 부단한 정진이다. 제목처럼 깨져봐야 깨칠 수 있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깨짐’과 ‘깨침’이 동시다. 깨짐 따로, 깨침 따로가 아니다. 깨짐이 곧 깨침이고, 깨침이 곧 깨짐이라는 것이 책의 주제다. 깨졌다는 것은 이미 깨친 것이고, 깨쳤다는 것은 이미 깨진 것이다.

성철스님은 생전에 ‘구름 걷힘이 따로 있고 햇볕 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구름 걷혔다는 것은 이미 햇볕 난 것이고 햇볕 났다는 것은 이미 구름 걷힌 것’이라 가르쳤다. 이를 차조동시(遮照同時)라 한다.

곧 나를 송두리째 ‘깨지게’ 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부처임의 깨침, 불교의 깨침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생 도처에 스승이 있건만 당장 스승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스승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도 구세주지만 큰 배를 타고 있다고 믿는 자들은 구세주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지요. 문제는 자기 속의 오만입니다. 속에 오만이 도사리고 있는 한, 스승 없는 인생을 살다가 가는 수밖에 없지요.(28쪽)” 나를 깨뜨려야만, 내가 깨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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