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개월간 스님과 나눈
음식&살림 선문답
채식요리를 배우며
밥상의 지혜를 얻다

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

정위스님 이나래 지음 / 브레드

우연히 스파게티를 만들고, 꽃꽂이를 하고, 수를 놓는 스님을 알게 된 기자가 절에 드나들며 시시콜콜 기록한 절집 살림 이야기를 담았다. <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은 정성으로 버무린 사찰 요리로 손님을 대접하고 텃밭을 가꾸고 야생화를 기르는 비구니 스님의 소담한 일상을 기록한 책이다.

음식과 살림을 놓고 주고받는 기자와 스님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인생의 진정한 의미란 생활의 충실함 속에서 배어 나오는 자연스러움이란 것을 알게 된다.

일단은 요리 책이다. 계절마다 맛보고 해보면 좋을 만한 사찰음식들을 선보인다. 사진만으로도 그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한눈에 보이는 요리 전 과정 사진과 재료 고유의 맛과 간을 맞추는 법칙도 상세하게 실었다. 오랫동안 요리로 수행한 비구니 스님의 내공이 음식의 겉모양에 기품을 더한다.

여름 반찬은 쉽게 상하지 않도록 오래 조리고, 모과차는 과즙이 잘 나오도록 필러로 얇게 켜서 담그고, 비빔밥의 당근은 비빌 때 뻐덕뻐덕하게 걸리지 않도록 얇게 채 썰고, 오이는 수분이 날아가니 마지막에 썰고, 식용유 묻은 손으로 배를 썰지 않고, 크림스파게티는 느끼하니 김치를 넣어 만들고, 카레에는 마와 파인애플 등 다양한 질감의 재료를 넣어 씹는 맛을 더하고 등등.

세세하고 까다로운 레시피 덕분에 된장찌개는 멸치 없이 끓여도 구수하고 매생이국은 굴 없이 끓여도 담백하다. 정위 스님의 채식은 그저 레시피를 넘어, 매일 주어지는 밥상에 배려를 더하는 지혜를 알려준다. 
 

'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에서는 무소유의 정신이 깃든 사찰요리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사진제공 브레드
'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에서는 무소유의 정신이 깃든 사찰요리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사진제공 브레드

물론 아무리 뛰어나고 기발한 비법을 담았다 하더라도, 단순한 요리 책이었다면 책은 빛깔만 화려했을 것이다. 스님의 음식 속에는 풍미와 향기만이 아니라 불교가 숨 쉰다. 외투는 30년, 냄비는 25년, 안경은 15년. 스님이 쓰는 물건의 나이는 기본적으로 두 자리다.

다포와 앞치마는 기워 쓰고, 표고버섯 기둥도 모았다 반찬하고, 뒷산에 버려진 나무토막은 주워다 목어(木魚)로 만들었다. 자투리 종이는 메모지로 쓰고, 장롱 속 옛 물건은 액자, 커튼, 이불로 되살려 쓴다.

“‘스님, 이 꽃은 어떻게 꽂으신 거예요? 멋스러워요’ 하면 ‘그런 거 없어요. 꽃 시장 갔다가 바닥에 이파리 하나 떨어져 있기에 주워다 접시에 물 붓고 그냥 얹은 거예요’ 하고, ‘스님, 그 앞치마의 꽃 자수는 스님이 놓으셨어요?’ 하면 ‘앞치마가 해져서 천을 덧댔는데 밋밋하기에 그냥 꽃 몇 개 수놓은 거지 아무것도 아니에요.’라는 답이 돌아온다.(12쪽)”

최선을 다 해서 아껴 쓰고 다시 쓰고 오래 쓰는 삶에서, 완전히 내면화된 공생과 자비의 ‘에코라이프’를 배울 수 있다.

저자인 정위스님은 덕숭총림 수덕사 견성암으로 출가해 현재 관악산 자락의 현대적인 사찰 길상사에서 살고 있다. 바느질 솜씨도 좋아 최근 〈정위 스님의 자수 정원〉을 펴냈다.

공동 저자 이나래 씨는 여러 월간지에서 라이프스타일 분야 기자로 14년간 일했다. <친정엄마네 레시피> 등 음식 관련 책을 여러 권 만들었다. 스님의 알뜰함과 검소함에 감동해 책을 썼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 양말도 기워 신는 스님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저 저한테 온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요. 저와 인연 닿은 물건에 제가 인격을 부여하곤 합니다.(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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