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남 작가 ‘묵으로 만나는 선’展

40년간 산수 그린 중견작가
3년전부터 장군죽비 작품화

선방에서 수행자 몸과 마음
흐트러지지 않게 경책하는
장군죽비는 깨어있음 상징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장군죽비에 가지·새싹 표현

11월17일 보령 웅천돌문화공원 갤러리탑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박주남 작가.

용파(龍波) 박주남 작가는 자유로운 운필과 변화 있는 먹색으로 다양한 분위기의 수묵화를 발표해 온 중견작가다. 학창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그의 손에는 늘 붓이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때 만화가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한국화가로 꿈을 바꾼 건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을 관람하면서다.

“2살 터울의 친형이 40년 가까이 선방과 무문관을 다니며 수행정진하는 수좌예요. 그 스님이 출가 전 대학생 때, 서울에 올라온 촌놈인 저에게 제대로 된 그림을 구경시켜 주겠다며 데려간 곳이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국전 전시회였어요. 그 작품들을 접하면서 그 자리에서 나도 한국화가가 돼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됐죠. 그게 벌써 40년 전의 일이네요.”

실경산수화를 주로 그린 박 작가의 마음속에는 늘 불교가 자리잡고 있었다. 산수를 그리기 위해 전국에 이름난 명소를 누비다보니 자연스레 명산대찰도 많이 다녔다. 산수를 그리면서도 그림 제목은 물론 전시회 주제도 피안으로 가는 길로 잡았다.

독실한 불교집안에서 성장한데다가 그에게 그림을 체계적으로 지도해준 이도 스님 출신 작가였다. 제자를 지도하다가 결국 다시 출가수행자의 길을 걷게 된 그 스승은 미술에 대한 가르침은 물론 불교적 영감을 적지 않게 건네줬다. 특히 스승의 출가 제안에 박 작가는 행자생활을 잠시 하기도 했지만 그림에 대한 욕구를 버리지 못해 다시 산문을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저는 그림과 불교, 둘 다가 정말 좋아요.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가 없었어요. 스님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계속 그려도 되는데 저는 그 게 안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작가로 살되 불교 관련 그림을 계속 그리기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죠.”

박 작가는 충남 보령으로 낙향해 그림작업에 매진하면서 문화원 등을 통해 지역민에게 산수와 사군자 등을 지도하고 있다. 산수와 사군자는 물론 불화(佛畵)도 그렸다. 동방불교대학 불교학과에 이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회화예술을 전공하는 등 6년간 체계적으로 불화를 배우기도 했다.

산수를 그리면서도 절 풍경을 담아냈던 박 작가는 2016년부터 장군죽비(將軍竹篦)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불교 그림, 특히 선()을 제대로 그리고 싶어서다. 장군죽비는 참선할 때 졸거나 마음이 나태해져 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나 등 부위를 내려치는 약 2m 크기의 큰 죽비를 말한다. 선가에서는 수행자의 몸과 마음 자세가 흐트러짐을 경계하고 경책함으로써 늘 깨어있음을 상징하는 불구(佛具)로 손꼽히고 있다.
 

‘장군죽비’ 작품.

참선 수행을 이어오고 있는 박 작가는 어느 날 문득 집 안에 있던 죽비를 보면서 선방에서 늘 깨어있음을 상징하는 죽비를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친형인 수좌 스님은 박 작가를 만날 때마다 앉아 있냐는 질문으로 동생을 독려한다. “항상 못 찾아요라고 답하지만 늘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박 작가는 죽기 전에는 반드시 찾았으면 좋겠다는 결기도 묻어나올 만큼 수행 정진에도 힘쓰고 있다.

박 작가의 장군죽비 작품에는 대나무로 만든 죽비에서 가지는 물론 파란 새싹까지 나온 게 눈길을 끈다. 죽비는 깨어있음을 상징하며, 깨어있음은 곧 살아있음을 뜻하는 만큼 죽비 또한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가지와 새싹을 그려 넣는다는 게 박 작가의 설명이다.

또한 박 작가는 한지 위에 수묵으로 죽비를 그린 뒤 <자경문> <신심명> <예불문> 구절을 써 넣거나 <금강경><증도가> 구절을 탁본으로 새겨 넣는다. 보령불교청년회장 출신인 동생 박주부 돌조각가로부터 각자(刻字)를 직접 배워 탁본으로 쓸 경전 구절을 직접 돌에 새기고 탁본도 하고 있다.

박주남 작가는 오는 30일까지 한달동안 보령 웅천돌문화공원 내 갤러리탑에서 14번째 개인전으로 ()으로 만나는 선()’ 초대전을 열고 있다. 전시작품 총27점 가운데 25점은 장군죽비다. 나머지 작품은 흐트러진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대나무 빗자루를 다룬 ()’ 작품과 통도사 석조 봉발(보물 제471)을 그린 발우작품이다.

늘 깨어있고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법을 전할 때 가사와 함께 전한 발우는 물론 빗자루 또한 이같은 의미에서 그렸어요. 죽비 작품 사진을 불교를 잘 모르는 지인에게 전했더니 죽도(竹刀)가 멋있다는 재미있는 답변이 오기도 하더군요. 죽는 그날까지 계속 참선수행하면서 불교, 특히 선을 작품으로 담아내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요.”

박주남 작가는 개인전을 14차례 열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는 물론 루마니아, 미국 등지에서 350여 차례 단체전에도 동참했다. 대한민국미술대전과 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 충남미술대전, 경향미술대전, 삼성현대미술대전 등에서 운영위원과 심사위원 등으로 활약했으며 충청현대한국화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보령=박인탁 기자 parkintak@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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