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을 건너느라 핼쑥해진 어머니가
하얀 봉투 하나를 수줍게 내미신다
귀퉁이 또박또박 쓰신
‘사랑한 내 딸 행복해라’
읽을수록 흐려지는 과거형의 그 한마디
눌변의 갈피마다 멈칫대는 옛 기억이
눈자위 마른풀 같다
그 풀의 그늘 같다

-이승은 시 ‘마른 풀’에서
 


어머니께서 살아오신 날들은 몹시 심한 추위의 날들이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핏기가 없이 파리하게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어머니께서는 딸에게 또렷한 글씨로 사랑의 말씀을 건네셨다.

시인은 어머니께서 건넨 이 문장에 가슴이 뭉클하다. 마른풀 같은 눈빛과 마른풀의 그늘 같은 일생을 떠올리니 그저 먹먹하다. 더듬거리며 하는 서툰 말씀이라도 진심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시인은 최근에 어머니께 바치는 시조집을 새로이 펴내면서 어머니의 존재를 “나의 첫사랑이었으며 마지막 스승으로 평생의 그늘막이 되어주신 여자”라고 썼다. 

[불교신문3537호/2019년11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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