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효대사는 몸소 대중을 교화한 실천가”

평등·차별성 동시 드러내며
대립 문제 해결하는 방법론
‘일체유심조’ 의미 되새겨야

본지 3532호(2019년 11월6일자) ‘수미산정’에 실린 자현스님의 글을 보고 본지 황건 논설위원이 반론 글을 보내왔다. 원효스님이 주창한 ‘화쟁론’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론이며, 원효스님 자신도 실천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요지의 자현스님 글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담은 글이다. ‘화쟁론’이 이상론에 불과하며 원효가 실천을 담보하지 않았다는 자현스님의 주장은 논쟁의 여지가 많은데다, 갈등이 끊이지 않는 우리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화쟁의 유용성 여부를 학술적으로 논쟁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판단해 반론을 싣는다. 

 

황건
황건

의과대학에 입학해 의예과 2년을 마치거나, 일반 학부 4년을 마치고 의학전문대학원에 편입해 1학년에 배우는 과목 중에 학점 비중이 가장 큰 과목이 해부학이다. 팔다리, 몸통, 머리와 목을 배우고는 직접 시신을 해부하며 구조물들을 구조와 이름을 익히며, 각 부위의 학습이 끝나면, 필기시험과 실습시험을 치른다.

실기시험은 일명 ‘땡시험’이라고 부르는데, 시신에서 일정한 구조물을 표시한 것을 관찰하고 30초안에 정답을 적으면 된다. 30초가 지나면 종이 ‘땡’하고 울려 다음 문제로 이동해야 하기에 매우 긴장되는 시험이었다. 이와 같은 해부학실습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얼굴의 해부가 끝나면 눈 위부터 뒤통수까지의 두개골을 쇠톱으로 잘라내고 뇌를 꺼내 고정액에 보관하는 일이다.

그 때가 생각난다. 뇌막을 손상하지 않고 흥부가 박 타듯이 톱질을 하여 자전거 헬멧을 벗기듯이 뚜껑을 떼어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땀을 흘리며 겨우 작업을 마치고는 머리덮개뼈 안쪽면을 들여다보며 중간뇌막동맥이 지나가는 홈과 위시상정맥굴이 지나가는 길을 확인하였다. 그때 8명의 실습조원 중 누군가가 말했다. “원효대사가 물 마신 바가지.”

서기 660년경 원효대사가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가던 중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필자가 중고등학교의 역사와 윤리과목에서 원효사상의 핵심이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이라고 배웠던 것이 기억난다.

‘도는 모든 존재에 미치지만 결국은 하나의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대승기신론소)’며 만물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삶을 강조한 것과, 종파들의 서로 다른 이론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을 좀 더 높은 차원에서 통합하기 위해 노력한 ‘화쟁사상(和諍思想)’이었다. 이렇게 중·고등학교와 의과대학을 거치며 배운 원효대사는 훌륭한 고승이며 위인으로 내 마음에 새겨졌으며, 아마 타종교 신자도 그러할 것이다.

며칠 전 불교신문에서 “화쟁, 정확한 관점과 분석이 우선이다” 는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사회적 갈등이 문제가 되는 시기이기에 상세히 읽어보았다. 저자는 “화쟁은 말이 쉽지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이상론에 가깝다”고 하며, “원효 스스로는 무엇을 했는가? <무애가>를 부르며 시대의 반항아적인 삶을 산 것이 전부이지 않은가? 즉 원효의 화쟁 주장에는 치열한 실천과 성공은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자신의 앞가림도 하지 못한 관우’를 예로 들며 “원효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원효의 망령에 휩싸여 한국불교는 오늘날도 화쟁만을 말하고 있다”고 원효와 한국불교를 동시에 비판했다.

마음속으로 존경해온 역사적 인물이 이러한 비판을 받아 마땅한 지, 문헌을 찾아보았다. 김상현(원효의 무애행과 화쟁사상의 현대적 의미. 전자불전 2009;11:1~26, 2009)에 따르면, 원효는 이론과 실천을 겸했던 분으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삶을 추구하여, 이론적 탐구는 교학(敎學)의 연구로 전개돼 100여 부의 저서로 나타났고, 실천행은 대중교화로 천촌만락을 누렸다고 하였다.

화쟁은 세계와 신생의 본래의 모습을 의미하는 당위이며, 학문 방법론이자 실천행의 목표이기도 하였으며, 원효의 화쟁논리는 두 가지를 융합하나 하나로 획일화하지 않는 것이며, 그 전제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영근의 논문(원효의 사상과 실천의 통일적 이해. 철학연구 1999;47:161~180)을 보면, 원효의 다양한 사상은 그 안에 일관된 사유체계를 지니고 있고, 원효의 다양한 실천행은 그것을 가능케하는 이론적 토대를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起信論의 二門一心思想). 화쟁도 두개의 문(二門)이 같지도 다르지도 않기 때문에, 둘은 서로 화합할 수 있고, 또 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둘이 서로 같지도 다르지도 않기 때문에 서로 같게 동화되지도 않고, 다르게 이질화되지도 않으면서 서로 통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것들의 평등함과 차별성을 동시에 살려서 드러내 줌으로써 대립의 문제를 조화롭게 해결하였다고 하였다. 원효는 이문일심에 의해서 진(眞)과 속(俗)을 자유자재로 걸림 없이 드나드는 무애행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근거를 제시했다고 했다.

위 논문들을 살펴보면 나의 일천한 지식으로도 원효대사는 ‘자신의 앞가림도 못한 이상론자’가 아니라 100여 편의 저서를 쓴 이론가일 뿐 아니라 몸소 대중을 교화한 실천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화쟁’도 ‘불가능한 이상론’이라기보다 평등함과 차별성을 동시에 살려서 드러내 줌으로써 대립의 문제를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임을 알 수 있다.

내일도 얼굴뼈 골절을 수술하려 수술실에 들어갈 때 해골 모형을 가지고 들어가려 한다. 눈을 감싸고 있는 뼈들은 수도 많고 복잡하여 수술 중에 모형을 가끔 들여다보며 시신경등 구조물들의 손상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해골의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까닭이다.

[불교신문3537호/2019년11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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