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강현실은 ‘4차 산업혁명 초연결 시대’ 통로다

시적인 세계는 더 이상 현실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더 이상 꿈이 아니다. 
마셜 맥루언, <미디어의 이해> 중에서

 

보일스님
보일스님

➲ 겹쳐진 가상과 현실 

“이 매장에 있는 옷 다 한번 입어볼래요”라고 말한다면, 아마 점원은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당황할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 부자들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이다. 옷을 사고자 하는 사람은 치수만으로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색상이나 디자인이라고 해도 막상 입어보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장에서 모든 옷을 직접 다 입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요즘처럼 인터넷상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구매하는 경우는 더욱 실제로 자기가 입었을 때, 어울릴지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이제 방법이 생겼다.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이라는 기술을 통해서다.

직접 입어보지 않더라도 이 기술이 적용된 거울 앞에만 서 있으면, 그 옷을 직접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춘다. 일명 ‘증강현실 피팅 거울’이다. 거울에 비친 모습만으로는 실물과 다름이 없다. 일일이 옷을 갈아입으면서 불편을 느낄 필요도 없다. 그리고 일일이 직접 거울 표면을 만질 필요도 없다. 거울은 사용자의 움직임을 스스로 인식하고 반응한다.

사용자가 옷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가벼운 손짓 한 번으로 다른 옷으로 바꿀 수 있다.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려가며 옷이 잘 맞는지, 어울리는지를 살핀다. 거울 한편으로는 선택한 옷에 대한 가격과 제조사나 디자이너의 이름 그리고 어디서 가장 싸게 살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추가 정보 데이터들이 실시간으로 게시된다. 한 마디로 현실 공간과 정보 공간이 겹쳐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증강현실 앱도 출시되었다. 집에 가구를 들여놓고자 할 경우, 들여놓기 전에 제품을 자신의 집안 공간에 가상으로 배치해 볼 수도 있다. 3차원 입체영상을 통해 360도로 회전시키면서 다각도로 살펴본 후 구매를 결정할 수 있다.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증강현실’ 기술은 쇼핑, 게임, 교육, 군사, 여행, 의료 등 수많은 분야에서 매일 같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며, 우리 생활 곳곳을 파고들고 있다. 핵심은 역시 현실과 데이터의 중첩이다. 딥러닝 기술과 빅 데이터, 그리고 5G 초고속 인터넷 기술이 융합하면서, 인간은 종전에는 파악하지 못했던 현실 세계의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전송받으면서 현실을 뛰어넘고 한계를 초월하려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근간이 되는 빅 데이터를 현실 공간으로 끌어들이거나 아예 현실 공간에서 데이터 세계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길목에 바로 이 ‘증강현실’ 기술이 있다. ‘증강현실’ 기술은 인간이 데이터 세계와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 초연결 시대’의 통로인 셈이다. 

➲ 증강현실과 혼합현실

비행기 한 대를 조립하려면 몇 개의 부품들이 필요할까. 전문가가 아니어도 엄청난 수의 기계장치들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설령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그 많은 부품을 모두 외우고 하자 없이 조립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재밌는 사실은 비행기를 생산하는 보잉사의 연구원이었던 톰 코델(Tom Caudell)과 데이비드 미첼(David Mizell)에 의해 이 증강현실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고안해낸 것은 매번 와이어와 케이블을 연결할 때마다 각 부품의 데이터를 보여주는 가상의 이미지를 띄워 부품들끼리 제대로 끼워 맞춰지게 하고, 많은 기계 장치들이 하자 없이 작동되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것이 오늘날의 ‘증강현실’ 기술의 시초가 되었다. 말하자면, ‘증강현실’이란 현실에 존재하는 이미지에 가상 이미지를 겹쳐서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현실 세계에서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영상합성기술이다. 현실에서 구현할 수 없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거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최근에는 이 증강현실보다 진화한 ‘혼합현실(MR, Mixed Reality)’도 등장했다. ‘혼합현실’은 앞서 가상현실, 증강현실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기술이라고 평가받는다. ‘혼합현실’ 기술은 현실 세계에서 정보를 제공해줌으로써 현실의 경험을 보완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아예 가상의 대상물을 구현하는 기술이다. 즉 현실이 모니터가 된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의과대학 해부학 수업에서 학생들이 투시형 기기(HMD, Head Mounted Display)를 쓰고, 실물과 똑같이 생긴 인체를 혼합현실 기술로 구현하여 실습해 볼 수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인공적으로 구현된 인체를 바라보면서 장기들의 위치를 확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메스를 대고 수술을 해 볼 수가 있으며 그 해당 장기가 실물처럼 반응하는 기술이다. 한 마디로 상호작용성이 핵심 기술이다.

‘혼합현실’ 기술은 실제 현실을 배경으로 가상 그래픽을 입혀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나 새로운 대상물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고도의 종합적인 기술 결합이 요구된다. 현실 세계와 가상공간을 섞어서 현실의 사물과 가상공간의 사물이 실시간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가상현실의 장점인 몰입도와 증강현실의 장점인 현실감을 결합한 기술이다. 문제는 현실과 가상 세계를 얼마나 매끄럽게 연결할 것인지의 수준이 몰입도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딥러닝 기술과 빅 데이터, 그리고 5G 초고속 인터넷 기술이 융합하면서, 가상현실은 증강현실과 혼합현실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근간이 되는 빅 데이터를 현실 공간으로 끌어들이거나 아예 현실 공간에서 데이터 세계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길목에 바로 이 ‘증강현실’ 기술이 있다. ‘증강현실’ 기술은 인간이 데이터 세계와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 초연결 시대’의 통로인 셈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딥러닝 기술과 빅 데이터, 그리고 5G 초고속 인터넷 기술이 융합하면서, 가상현실은 증강현실과 혼합현실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근간이 되는 빅 데이터를 현실 공간으로 끌어들이거나 아예 현실 공간에서 데이터 세계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길목에 바로 이 ‘증강현실’ 기술이 있다. ‘증강현실’ 기술은 인간이 데이터 세계와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 초연결 시대’의 통로인 셈이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우리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 모두 현실이 된다면 어떨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니까 재밌을까. 마냥 즐겁고 신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쯤 해서 영화 한 편 소개해 볼까 한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벤 스틸러, 2013)에서 보여주는 메시지는 매우 흥미롭다. 주인공인 사진작가 ‘월터’는 <라이프(LIFE)>지에서 필름을 편집하는 일을 맡고 있다. 종이 잡지회사였던 <라이프>지는 인터넷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온라인 회사로 전환을 시도하게 되고, ‘월터’는 해고 위기에 놓인다.

설상가상으로 ‘월터’는 폐간을 앞둔 종이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 표지 사진에 실릴 원본 필름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월터’는 사라진 그 사진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원본 필름 사진작가를 직접 찾아 나선다. 문제는 이 사진작가가 지구상에 있는 오지만을 찾아다니면서 사진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특별히 해본 것도 없고 가본 곳도 없으며 특별한 일도 없었던 ‘월터’에게는 그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 과정에서 상상을 넘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 비행하고 있는 헬기에서 뛰어 내린다든가, 아이슬란드의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으로 돌진하는 등 상상을 넘어서는 모험을 하게 된다. ‘월터’는 결국 우여곡절 끝에 히말라야에 가서야 그 전설적인 사진작가 ‘션 오코넬’을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상상과 공상 속에서만 머물러 있다가 용기를 내고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마음의 변화를 잘 따라가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주인공 ‘월터’처럼 매일 매일 순간순간을 가상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저 상상과 공상이 만들어낸 허구의 공간 속에서 말이다.

때로는 가상현실로, 때로는 증강현실로 아니면 혼합현실로 몰입도와 상호작용을 달리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진짜 현실 세계를 허구의 세계로 만들어 버릴 것인지, 아니면 허구의 세계를 진짜 현실 세계로 만들어낼 것인지는 각자의 생각에 달려 있다. 과연 상상만으로 현실이 될까? 정말 그럴까? 

➲ ‘중중무진법계’와 법장의 유리방

삼라만상이 서로 관계하면서 경계가 없고 뒤섞여, 하나로 융합되어 있어 구별할 수 없는 모양을 화엄 ‘오교장(五敎章)’에서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고 표현한다. 현실 세계와 가상세계가 서로 상즉하고 상입하며, 두 세계가 하나인 동시에 별개라고도 할 수 있다.

현수법장(賢首法藏, 643~712)스님은 화엄 법계의 이치를 설법해 줄 것을 청한 측천무후(則天武后)에게 지금으로 치자면, 일종의 ‘혼합현실’을 보여준다. 법장스님은 사방의 벽, 천장과 바닥이 모두 거대한 거울로 된 방으로 측천무후를 데리고 간다. 그리고 방 가운데에 불상과 촛불을 하나 두어 벽과 천장, 바닥의 거울에 그 상이 중첩해서 비치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 이치를 설했다는 일화가 있다.

우리 마음속 상상들은 법장스님의 유리방 속의 촛불과 같다. 마음이 비친 수많은 촛불은 또 다른 촛불을 무수히 비춘다. 서로가 겹쳐지면서 서로를 비춘다. 각각의 촛불은 저마다 독립적인 개체로서 존재하면서 서로를 내포하고 있고, 하나의 촛불과 전체의 촛불이 통일되면서 이어진다.

실상과 허상의 경계는 이미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원래 촛불이든 거울 속에 비친 촛불이든 겹겹으로 포개진 듯 이어지고 또 이어지며(중중무진) 연기할 뿐이다. 그럼 내 마음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다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로 돌아가 보자. 마침내 주인공 ‘월터’는 사진작가 ‘션 오코넬’을 만났지만, ‘션 오코넬’은 월터의 딱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작업에 집중한다. ‘션’은 히말라야에서 희귀종인 눈표범 사진을 렌즈에 담기 위해 바위틈에서 며칠을 잠복하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월터’와 ‘션’은 경이로운 자태를 한 그 눈표범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 숨을 죽이고 멍하니 표범을 바라보던 ‘션’은 월터에게 말한다. “가끔 안 찍을 때도 있어.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 뿐 이야. 바로 지금 여기에…”

[불교신문3537호/2019년11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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