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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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점점 깊어간다. 앞마당 은행나무 아래는 온통 금빛 카펫을 펼쳐 놓은 듯 황금빛 잎들이 깔려있다. 뜨락 목련나무 옆에 단감나무가 한그루 있다. 올해는 유난히 많이 열려 점심공양 후에 산책하며 잘 익은 것으로 하나씩 따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맛이 입 안 가득 고이는 것이 제대로 맛이 들었다. 그런데 이 단감도 전에는 이렇게 달지 않았다. 이 감나무 바로 옆에 떫은 감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그때는 익은 단감도 떫은 감이나 진배없을 정도로 떫었다. 맛이 없으니 아예 따먹지도 않고 곶감도 못 만드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어느 날 지인과 정원을 산책하다가 단감나무 앞에 섰다. 하나를 따먹더니 “아이 맛없어, 퉤퉤”하며 뱉었다. 내가 이 단감나무는 맛이 없다고 하자 옆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저 감나무는 뭐냐고 물었다. 떫은 감나무라고 했다. 그분이 손바닥을 탁 치며 얘기했다.

“원인을 알았습니다. 이 단감이 떫은 것은 옆에 있는 저 떫은 감나무 때문입니다. 감꽃 피었을 때 벌들이 붙어있는 두 감나무를 오가서 그런 겁니다.” 그 말씀을 듣고 떫은 감나무를 옮기고 나니 단감나무는 본래 맛을 회복했다. 

불교 논서 가운데 성유식론이라고 있다. 거기에 중동분(衆同分)이라는 말이 나온다. ‘같이 어울리는 것들이나 무리’라는 뜻이다. 단감나무도 옆에 떫은 감나무가 있으면 떫은맛으로 변하는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가족이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지, 도반이 누구이고 스승은 누구인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가까이 있으면 그렇게 물이 들게 마련이다.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이고, 수행을 즐겨하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모인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늘 긍정적이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어울리면 나도 자연스럽게 행복해진다. 인생을 아름답고 즐겁게 살고 싶은가? 비결은 영혼이 맑고 순수한 사람들과 끼리끼리 잘 어울리면 된다. 

[불교신문3537호/2019년11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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