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품안에서 지내던 유년의 시절 보다
부처님 법안에서의 생활이 더 깊어져
출가한 파고의 흐름이 사십년이 넘었습니다.
늙은 도반들은 소식만 들리고 몸은 병고만 찾아드니
법을 얻지 못한 수행자에게는
어머님께 친절하지 못한 불효에 대한 애상만 남는가 봅니다.

고향 떠나 출가한다 할 때에
출가하여 법을 얻으면 육친이 생천한다고 하지만
평생 출가 수행자로 논두렁 베고 죽을 수 있느냐고
어머님께서 낮은 말로 물으셨지요.
기억의 첫 자리에 늘 자리하였습니다.
소유하지 않는 탐착도
세상사 있는 그대로 놓고 볼 수 있는 차이라는 것도
차이는 있으나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도
수행으로 얻은 큰 힘이였습니다. 
그 날은
들에 핀 작은 꽃들이 무지갯빛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어머니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남자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렵다 했는데
금생에 들어 이 세 가지 어려운 일을 모두 이루었으니
수행자로 설혹 불효의 애상이 참회로 남더라도
다음 생에는 더 좋은 일만 있지 않겠습니까?
어머님의 사랑은 법계를 아우르는 큰 울타리 이었습니다. 
 

‘로담’은 조계종 문화부장, 불교문화재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정안스님의 법호(法號)다. 현재 승가학원 이사. 1991년 월간 <문학공간>으로 등단해 <나 너답지 못하다고> <젊은 날에 쓰는 편지> <뭐> <아부지> 등 시집을 펴냈으며 저서로 <한국의 시승> 조선·고려·삼국편과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번역서로는 <중국의 시승>, <연방시선(蓮邦詩選)> 등이 있다.

[불교신문3536호/2019년11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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