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전통수행 ‘탁발’…저잣거리에서 되살리다

빛고을 광주 남구에 자리한 무등시장은 정과 덤이 넘치는 생활밀착형 전통시장이다. 11월9일, 무등시장에 한 무리의 스님들이 발우를 들고 등장했다. 30여명의 스님들이 행렬을 지어 상가앞을 지나며 탁발(托鉢)에 나선 것이다. 무등시장상인회 풍물패를 앞세운 탁발행렬은 전통시장을 흥겨운 축제장으로 만들었다.

<br>
11월9일 광주 무등시장 한복판에 목탁소리와 기도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스님들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행인들은 탁발하는 스님들의 모습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시장 상인들은 스님들이 들고있는 발우에 정성이 담긴 보시를 넣었다.

“어렸을 때 산속에 사는 스님들이 먹을 것을 얻으러 마을에 내려오면 따라다니면서 놀려대곤 했어요. 그때는 철이 없었죠. 오늘 탁발하시는 스님들을 뵈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적은 금액이지만 보시를 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주말마다 장을 보러 무등시장에 나온다는 유지희 씨가 “스님들에게 보시를 하고 나니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며 스님들을 향해 합장을 한다.

이날 무등시장에서 펼친 스님들의 탁발은 광주지역 불교청소년단체들이 기획한 ‘제1회 전통탁발재현 문화행사’이다. 탁발행사에는 지역 스님뿐 아니라 김병내 남구청장, 임승우 무등시장상인회장 등 지역기관장과 불교합창단, 불교산악회 등 불교단체, 상인, 불자, 시민들이 동참했다.

특히 탁발에 앞서 김병내 남구청장은 축사를 통해 “탁발은 나눔이다”며 “스님들의 탁발로 모여진 상인과 구민의 민원은 최선을 다해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광주 신광사 혜운명사의 입적 후 스님의 앨범에서 나온 예전 탁발하는 사진. 이제는 사라진<br>송락(소나무에 사는 겨우살이를 엮어 만든 모자)을 쓰고 탁발을 가는 모습. 1960년대 전후에 촬<br>영된 것으로 보인다.<br>
광주 신광사 혜운명사의 입적 후 스님의 앨범에서 나온 예전 탁발하는 사진. 이제는 사라진 송락(소나무에 사는 겨우살이를 엮어 만든 모자)을 쓰고 탁발을 가는 모습. 1960년대 전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광주에는 (사)광주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회장 소운스님)와 광주전남불교어린이청소년연합(회장 도성스님), (사)동련 광주지구(회장 지장스님) 등의 청소년단체가 있다. 이들 단체를 후원하는 사찰이 30여곳에 이른다. 광주를 비롯해 나주, 담양, 화순, 완도, 강진, 장흥 등 지역 사찰들이 어린이청소년 포교를 위해 정기적으로 매달 만나 운영회의를 갖고 있다.

“불교청소년단체가 모여 포교 기금마련을 위한 모금행사로 탁발을 하기로 했습니다. 기왕이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탁발의 옛 모습을 재현하고 모여진 기금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런 취지를 남구청과 무등시장상인회도 동의해 전통탁발재현문화행사가 마련됐습니다.”

탁발행사를 주최한 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 광주지부 회장인 소운스님(광주 관음사 주지)은 “이번 탁발행사는 사라진 탁발문화를 재현할 뿐 아니라 주민과 소통하는 희망나눔 행사”라고 소개하며 환하게 웃었다.
 

시장 거리에서 탁발하고 있는 스님들.<br>
시장 거리에서 탁발하고 있는 스님들.

탁발에 나선 스님들은 기부금과 물품 보시뿐 아니라 상가와 지역민들의 소원 및 민원지를 함께 받았다. 탁발을 마치고 광주시민 안녕과 무등시장 번영을 발원하는 기원재에서 소원기도문을 축원하고 민원지는 구청에 전달했다. 또한 무등시장에서 탁발한 보시금 150만원과 지역 사찰, 불자들의 성금 250만원 등 총 400만원을 남구청과 무등시장 상인회가 추천한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탁발은 부처님재세시부터 펼쳐온 전통수행이다. 근세에 들어 스님들의 품위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탁발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자 조계종이 1964년부터 종단차원에서 탁발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탁발은 스님들이 마을에 내려와 부처님 말씀을 들려주고 식량을 구할 뿐 아니라 마을사람들의 고충과 고민을 듣고 축원해주는 승속이 어우러진 공동체 삶이자 수행이었다.
 

③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 광주지<br>부 회장 소운스님이 김병내 광주 남구청장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br>
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 광주지부 회장 소운스님이 김병내 광주 남구청장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이날 탁발 재현행사에는 젊은 시절 탁발을 많이 했던 신광사의 세수 88세, 86세인 경인스님과 경주스님도 참석했다. 스님들에게 진짜 탁발했을 때 이야기를 물었다.

“탁발 많이 나갔죠. 절에 17살에 왔는데 당시에 탁발 안하면 못 살았어요. 쌀하고 보리를 탁발해왔어요” 경주스님이 당시엔 어려웠다면서 말을 했다. 경인스님도 “탁발하러 가면 잘 주는 사람도 있고 못주는 사람도 있고 우린 천당 가야 항께 오지 마쇼 하고 문을 탁 닫아 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기어코 버티고 서서 한 톨이라도 꼭 받아 나왔다” 며 기억 속의 이야기를 전했다. 올해 처음 개최한 전통탁발재현문화행사 참가자들은 ‘탁발문화보존발전회’를 결성키로 했다.

내년부터 탁발행사를 광주광역시와 연대해 분기별로 개최할 예정이다. 이렇게 사라져가는 불교전통수행인 탁발이 저잣거리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탁발행사에 참석한<br>광주 신광사. 경인스님(사진 왼쪽)과 경주스님. 두 스님들은 젊을 때 탁발했던 이야기를 전해줬<br>다.<br>
탁발행사에 참석한 광주 신광사 경인스님(사진 왼쪽)과 경주스님. 두 스님들은 젊은 시절 탁발했던 이야기를 전해줬
다.
이날 탁발행사에는 ‘탁발문화 보존발전’을 선두로 ‘수능시험 대학합격’, ‘전통시장 대박’<br>‘힘내라 청년들이여’ ‘대한민국 평화통일’ 등 다양한 소망을 담은 번이 행렬 맨 앞에 섰다.<br>
이날 탁발행사에는 ‘탁발문화 보존발전’을 선두로 ‘수능시험 대학합격’, ‘전통시장 대박’ ‘힘내라 청년들이여’ ‘대한민국 평화통일’ 등 다양한 소망을 담은 번이 행렬 맨 앞에 섰다.
탁발을 마친 한 스님의 바루에는 시장상인들이 보시한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탁발을 마친 한 스님의 발우에는 시장 상인들이 보시한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이준엽 광주·전남지사장 maha0703@ibulgyo.com
사진=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3536호/2019년11월20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