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우리말로 번역한 ‘무위진인’
일상 속의 우리말로 번역한 ‘무위진인’
  • 장영섭 기자
  • 승인 2019.11.19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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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의 왕 ‘임제록’
구어체로 알기 쉽게
수처작주·살불살조
요점 친절하게 설명

임제록

석지현 역주 해설 / 민족사

경전의 왕(王)이 <화엄경>이라면, 어록의 왕은 <임제록(臨濟錄)>이다. 중국 당나라 임제의현 선사의 법문을 모은 임제록은 예로부터 선어록의 백미라 불렸다. 그 문장이 직설적이고 명료해서 선(禪)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나 전문적인 선 수행자에게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이번에 간행된 역주·해설본 <임제록>에는 중국 임제종과 조동종(묵조선) 계열의 역작인 <벽암록>(전5권)과 <종용록>(전5권)을 역주·해설한 저자의 내공이 집약돼 있다. 시인으로서 선시(禪詩)와 선어(禪語)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전념해 온 인물이다. 독자들이 임제록의 요점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구어체 스타일로 번역했다.

임제 선사는 준엄하고 강력한 선풍(禪風)으로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후세에 큰 영향을 끼친 공안(公案, 공인된 화두)도 많다. 불자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가르침이 바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디를 가든지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면 현재 서 있는 그곳이 곧 모두 진실한 곳이 된다는 뜻이다. 또한 ‘무위진인(無位眞人, 아무런 속박 없는 참사람)’도 임제 선사를 대표하는 명구이고,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인다)’도 길이 빛나고 있다.
 

선불교의 고전인 임제록을 현대 구어체로 쉽게 번역한 신간이 나왔다.
선불교의 고전인 임제록을 현대 구어체로 쉽게 번역한 신간이 나왔다.

다음의 설법에서 무위진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드러난다. “수행자 여러분, 지금 내 눈앞에서 홀로 밝으며 분명하게 내 설법을 듣는 자, 바로 이 사람(그대 자신)은 어느 곳에서든 막히지 않고 시방을 관통하며 삼계에서 자재롭다. 그리고 이 모든 차별 경계에 들어가지만 경계가 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 그는 삽시간에 이 모든 세계(法界)에 들어가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에게 설법하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에게 설법하며,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에게 설법하고, 아귀를 만나면 아귀에게 설법한다. 그는 이처럼 이 모든 곳에 노닐면서 중생을 교화하나 일찍이 이 한 생각[本來心]을 떠나지 않았나니, 가는 곳마다 청정해서 그 빛이 시방을 꿰뚫으며 이 모든 존재가 평등해서 마치 하나와 같다.”

신간 임제록의 역자는 아래와 같은 해설로 답을 제시한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영원하지 않다’는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나 자신(본래 자기)은 불멸의 존재다. 여기에서 시간과 공간이 나왔고, 부처와 마구니가 나왔다. 온갖 종교와 철학과 예술이 흘러나왔다. 깨닫는다는 것은 바로 이 ‘나 자신’을 깨닫는 것이다. ‘지금 여기’ 있으면서 이 우주에 충만해 있으며, 까마득한 과거와 먼 미래를 관통하면서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 그러나 찾아보면 아무 흔적도 없는 것, 그러면서도 저 태양보다 밝고 어둠보다 더 어두운 것, 이것이 바로 ‘나 자신’이다. 수행은 결국 이 ‘나 자신’을 나 자신이 탐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의문을 푸는 블랙홀의 열쇠가 바로 여기 있으므로….” 지금 시퍼렇게 살아있는, 어떻게든 살아있는 나 자신이 바로 나의 무위진인이다.

‘석지현 역주 해설본’의 특징은 일단 구어체다. 본래 선어록들이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쓰였다. 그 당시에는 누구나 아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사전에조차 없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임제록에 유독 옛 시대의 난해한 속어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그것이 구어체로 쓰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임제록을 현재 한국의 언어로 되살려 읽는 맛을 높이고 있다. 본문을 ‘1-1’에서 ‘59-2’까지 단락으로 나누어 각각 [번역], [해설], [원문], [주(註)] 순으로 정리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특히 임제 선사는 임제록에서 <장자(莊子)>를 비롯해 수많은 경전과 선어록에 나오는 용어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종수는 무려 50여 종에 이른다. 언어를 부정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경전과 어록을 총망라하고 있는 셈이다.

역주·해설본은 인용된 언구들을 총정리했다. 독자들이 단락별로 임제록의 요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한다. 한문으로 쓰인 원문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번역]과 [해설]만으로도 임제록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원문에 대한 자세한 주(註)도 선(禪)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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