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
이성수

“이승만 대통령은 지난 22일 제31육군병원 통도사분원에 정양(靜養) 중인 상이장병들에게 양말 1600족(足)을 대통령 비서실로 하여금 동(同)병원 통도사 분원장 장○○ 군의(軍醫)중령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1951년 10월 24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이다.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 후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 상황에서 육군은 통도사를 징발(徵發)해 군병원으로 사용했다. 통도사 육군병원에 대해선 사중(寺中)과 마을에서 전해 온 이야기가 전부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월 26일 통도사(주지 현문스님)가 용화전 미륵불소조좌상의 복장유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구하스님의 친필 ‘연기문’은 통도사 육군병원의 존재를 확인한 귀중한 자료다. 1952년 9월 작성된 연기문은 한국전쟁 당시 통도사에 3000여명의 상이병이 치료를 받았음을 증명했다. 

수행도량의 기능을 잠시 멈추고 병원의 소임을 담당한 통도사는 장병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처절한 현장이었다. 사경(死境)을 오가는 부상병들의 신음소리로 가득 찼다. 비록 소개령(疏開令)에 따라 마을로 내려가야 했지만 스님들은 장병들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마을과 사찰을 오가며 부상병 치료에 힘을 보탰다. 중생의 고통의 외면하지 않고 구제하기 위해 나선 약사여래이며 관음보살의 행원(行願)을 실천했다. 스님들의 보살행은 한 줄기 구원의 빛으로 다가왔고, 참혹한 전쟁에서 위안과 안심(安心)을 주었다.

통도사 육군병원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국방부와 의무사령부(육군병원의 후신) 등에 문의했지만 존재조차 몰랐다. 어딘가는 자료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기에 본지는 취재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이하는 2020년에는 통도사 육군병원 뿐 아니라 불교(사찰)의 역할을 온전히 조명해야 할 것이다. 국방부와 의무사령부도 통도사 육군병원의 사실(史實)을 확인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마침 통도사가 내년에 예정하고 있는 호국영령수륙고혼천도재 때까지 새 자료가 나오고, 정부에서도 구체적인 현양(顯揚)의 노력을 하길 바란다.

[불교신문3535호/2019년11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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