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타오른다
누군가 타고 있다
그 누군가의 삶이
사라져간다 …

“제목이 ‘불꽃’ 맞지?
그날 활활 타오르는
시체를 보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잖아”

안혜숙
안혜숙

날씨가 쾌청하질 않아 산책도 접어버리고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앞마을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문득 새벽에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었던 기억에 마당을 가로 질러 대문 밖까지 달려가다가 논두렁에서 나는 연기를 보고는 그만 뒤돌아서고 만다.

처음 시골에 와서는 하얀 연기만 나도 불이 난 줄 알고 달려갔다. 그날은 마침 친구가 와서 함께 산책길에 나섰다가 미세먼지 때문에 그냥 발길을 돌리던 중이었다. 별로 멀지 않은 곳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 불이라도 난 줄 알고 겁에 질려 달려갔다. 그런데 불은 어처구니없게도 쓰레기 봉지에 담겨진 오만 잡동사니들을 태우는 중이었다.

폐휴지나 마른잡풀들을 태우는 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생수병인 플라스틱이 지글거리는 걸 보고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미세먼지로 예민해 있던 터라 더 화가 났다. 정신이 있느냐고, 고발하겠다는 내 말에 그들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마침 내 달음박질에 놀라 뒤쫓아 왔다가 벌컥 화부터 내는 내 꼴이 우스워 잡아당겼다는, 친구 말대로 나는 끌려가듯 그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분은 개운치가 않아 큰 소리로 신고해야 된다고 투덜거리며 분리수거함은 왜 만들어놨는지 모르겠다고 계속 중얼거리는 걸 보던 친구는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

그리고 정색을 하면서 그들이 불을 지피는 건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들 방식이 네 맘에 들지 않는다고 다짜고짜 몰아붙이는 건 경우가 아니라고 타이르더니, 갑자기 인도가 생각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인도? 내가 되묻자 친구는 인도의 겐지스강이 생각났다고,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목청을 다듬었다. 

활활 타오른다/ 누군가 타고 있다/ 그 누군가의 삶이 사라져간다/ 죽은 자의 혼이 하늘을 유영한다/ 죽음은 단지 육체가 사라진다는 것/ 저 불꽃 속에서도 영원히 살아있는 영혼이 있기에/ 우리는 슬프지 않으리 

“제목이 ‘불꽃’ 맞지? 넌 그날 활활 타오르는 시체를 보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잖아. 그리고 한 편의 시를 ‘불꽃’으로 피워냈지. 우린 그날 그 시를 들으면서 얼마나 숙연했었는지… 나는 그 시가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그 다음은 생각이 안 나서 미안, 내가 감명 받았던 건 아마 함께 겐지스강을 봤기 때문일 거야.”

친구의 말에 나는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다. 그리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 속에서 죽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던 그날의 영감을 다시 떠올렸던 것이다. 

갠지스강변 노천 화장터에는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시신이 화장의식을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벌겋게 달군 불꽃은 이글거리며 주위를 환하게 비추었고, 강물은 말이 없었다. 오직 불꽃만이 하늘을 향해 춤을 추면서 망자의 사연이라도 읊어주는 듯, 타오르는 불꽃은 태우고 태워도 끝없는 너울이 되어 연기처럼 사라졌다.

우리 역시 입을 꼭 다문 채 화장터에서 발길을 돌렸지만 흰 광목에 쌓인 시체들은 여전히 나룻배에서 갠지스강과 함께 흐르고, 물결이 풍랑처럼 밀려와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가슴을 졸였다. 그때, 하늘을 나는 갈매기의 날갯짓에 누군가 손짓을 하면서 호위병사가 나타났다고 외쳤다.

그 순간, 나는 왜 눈물이 솟구치고 가슴이 뜨거워졌는지 지금도 그 아련함은 알지 못한다, 다만 산 자와 죽은 자,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곳, 삶과 죽음이 공전되는 겐지스강은 그들만의 문화적 현실이 분명하다는 걸 인식했을 뿐이다. 

갠지스 강변에는 계단식 목욕장이 길게 늘어져 있다. 그곳은 이른 아침 윤회(輪廻)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갠지스강에서 목욕하는 인도인들을 위한 시설물이다. 세상의 먼지뿐 아니라 오욕까지도 씻어내는 것이리라.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고 씻어내 주는 강물의 유유함에서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인간의 몸부림이 물결처럼 출렁거린다고 느꼈다.

그 강의 신비로움은 나에게 강렬한 힘의 전율로 온몸에 전파되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통증으로 엄습해 왔다. 그것은 인간의 번뇌와 업, 고통까지도 끌어안을 것 같은 형언할 수 없는 희열? 아니 그 무엇인지 모르는 이상한 기류에 가슴이 폭발할 것 같았다. 어쩌면 하얀 연기가 순결하게 느껴졌던 그 순간의 신비함을 죽음으로 맞이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불교신문3534호/2019년11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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