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
이은정

한밤중 잠이 깼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 틈을 비집고 화난 마음이 한 방울 톡 떨어졌다. 시작은 한 방울이지만 잠의 수면은 모두 깨어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솔직히 별일 아니다. 밤에 아이가 생일이라 조각 케이크를 사러 갔다.

초 하나를 부탁했는데 처음에는 준다고 하더니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했다. 다시 돌아가 물었더니 점장이 조각케이크에는 초를 주면 안 된다며 안줬다. 알바생은 미안한 얼굴이었다. 나는 따로 700원을 내고 초를 샀다.

돌아서 나오며 그 초가 얼마라고, 그리고 처음부터 안준다고 하지, 만약 집에 가서 초가 없었다면? 화가 났지만 소심한 나는 아무 말 없이 집에 왔다. 그게 많이 화가 났었나보다. 하릴없이 한밤중 잠이 깼는데 그 생각으로 꽉 찬 것 보면.

아 그때 뭐라고 항의할걸. 왜 줄 듯이 날 속였냐고 말할걸. 내 머릿속에서는 영화를 찍으며 상황별로 이러쿵저러쿵 따졌다. 하지만 화는 별로 가라앉지 않았다. 참 쪼잔 하지만 원래 서운함은 작은 일로 시작한다.

그렇게 생각에 꼬리를 잇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억울한 일이 생각났다. 그 일도 그때 나의 억울함을 속시원히 상대에게 말하지 못했었다. 그 억울함은 불현 듯 생각나곤 했다. 한밤중 나는 밀려드는 억울함에 시달렸다. 꿈을 꾼 거라 할 수 있으리. 어지럽고 부정적인 꿈.

잠 못 드니 그 꿈들은 어디서 나왔을까 따져보았다. 나는 마음속에 휴지통이 있다고 상상한다. 서랍이 아니다. 서랍은 대부분 필요한 물건들이 정리되어 있으니까. 휴지통은 버릴 것들로 채워진다. 억울함이나 분노는 물론 필요한 감정들이다. 하지만 그 감정들은 버려야 할 감정이다. 계속 품고 있으면 나를 해치고 힘들게 한다.

나는 시간이 지나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보니까 휴지통을 비우지 않았다. 부정적 감정들이 지금 내 마음의 휴지통에서 썩고 있었다. 점점 오래 놔둘수록 내가 썩는다. 나를 썩게 하는 휴지통을 비워야 한다. 그래야 나는 썩지 않는다.

나를 위해서라도 나는 비워야 한다. 쉽지 않다. 하지만 마음속에 휴지통이 있다고 상상하고 그 가상의 휴지통을 버리는 상황을 연습해보자. 가짜 웃음으로도 엔돌핀이 솟듯이 상상만으로도 우리 몸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한밤중에 나는 가상의 휴지통을 열심히 비우는 상상을 했다. 그러니 스르륵 잠이 밀려왔다. 잠결에 언젠가 그 쓰레기통 까지 버리는 날을 기약하며. 

[불교신문3534호/2019년11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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