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높고 물은 길게 흘러가도다

조계총림 방장 현봉스님
조계총림 방장 현봉스님

이 법장(法杖)인 주장자는 영산회상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전등 제대조사와 천하 선지식들에게 전해왔으며이 조계산문의 불일보조국사 진각국사 등의 여러 국사와 증명법사인 지공 나옹 무학스님과 청허 부휴 양대 조사를 거쳐, 근세에 조계종 초대종정 효봉대선사와 조계총림의 초대방장 구산대선사와 일각대선사 보성대선사에게 전해져온 이 조계총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불법의 표상입니다.

이 법장은 바로 진리의 지팡이입니다.

이 법장은 불가사의하여 천백억화신을 나투기도 하니, 바로 지금 이 주장자를 이렇게 보고 들을 줄 아는 여기 대중들이 그 화신들입니다이 법장은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본래 갖추어 있는 바로 그 한 물건입니다.

一條拄杖兮
無根亦無芽
行人善護持
處處發曇華

한자닥 주장자여!
뿌리도 없거니와 싹눈도 없구나.
수행인이 이를 잘 보호해 가지면
간 곳마다 우담발화가 피어나리다.

이 주장자는 뿌리도 없고 싹눈도 없고 모양이나 그림자도 없으면서 천지를 버티고 만물을 토해내며, 일월(日月)을 삼키기도 하고, 또는 번뇌 망상과 시비 갈등을 빚어내기도 합니다. 뿌리도 없고 싹눈도 없는 이 주장자에서 천하의 총림이 모두 나왔습니다.

총림이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행자들이 우거진 성스러운 숲이라는 뜻입니다.

총림은 영어로 헐리우드입니다.

인생이 한바탕 연극이라면 우리 대중들은 부처님처럼 진리의 삶을 펼치며 저마다 수처작주(隨處作主)인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가장 멋진 수행도량인 총림을 만들도록 합시다.

이제 우리 총림대중들은 이 주장자 하나에 모든 분별 망상과 시비 갈등을 모두 거두어 하나가 되어 이를 의지하여 서로 절차탁마하며 이 조계총림의 숲에서 각자의 소임을 다하며 자기 빛깔의 우담발화를 피워내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이 조계총림이 모든 불자들의 안신입명처가 되고 이 세상의 휴양림이 되는 총림이 되도록 정진합시다.

竪也吐出萬法
橫也呑却乾坤
一揮拂塵埃
山高兮水長

세우니 만법을 토해내고
눕히니 건곤을 삼켜버리네.
한번 휘둘러 먼지를 털고나니
산은 높고 물은 길게 흘러가네.

이 불자는 원래 먼지를 털어내는 물건이니, 바로 우리 중생들의 번뇌망상을 쓸어내는 방편의 도구(道具)이며 법구(法具)입니다.

이 불자는 세우면 천갈래 만갈래가 되고 눕히면 하나의 자루입니다.

세우면 천만갈래로 흩어지고 펼쳐지면서 온갖 연기를 일으키며 팔만사천의 경전이 되고눕히면 만법을 거두어 하나로 돌아가게 되니말이나 글이 미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마갈타국에서 문을 닫고 말없이 수행하시었고, 유마거사는 비야리성에서 둘이 아닌 불이법을 물으니 침묵으로 응대하였으며, 달마대사는 소림굴에서 묵묵히 면벽했습니다.

이 불자는 공성과 연기가 구족하고 불변과 수연이 상조(相照)하며 침묵의 양구와 방과 할과 장광설이 자재하니부처님께서는 이를 깨달아 49년간 종횡무진으로 횡설수설하시며 설법하시었고중생들은 이를 미혹하여 일생동안 자기의 업식을 따라 횡설수설하고 있습니다.

여러 대중들이시여. 불조의 횡설수설과 중생들의 횡설수설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이 불자를 휘둘러 모든 사량분별을 털어버리니 이사구절백비(離四句絶白非)라 긍정도 부정도 모두 사라져버립니다.

지난 밤 조계산에는 먹구름 속에 천둥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그러다가 새벽예불시간에는 먹구름이 걷히고 둥근 달이 휘엉청 밝았습니다.

모든 시비 갈등이 사라진 자리는 어떠합니까?

산은 높고 물은 길게 흘러가도다.

이 진리의 주장자를 다시 대중들에게 받들어 드리니,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서 부디 헛발을 딛지 않도록 조심조심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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