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광스님
진광스님

일본 하이쿠의 시성(詩聖)인 마츠오 바쇼(松尾芭蕉)는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라고 읊었다. 하기사 그걸 알면 비범한 인물일 것이다. 그러니 모두가 저만 안 죽는다는 얼굴들이다.

얼마 전에 종정감사를 일주일간 다녀왔다. 경북지역 세 개 본사와 수말사를 돌았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가람수호와 전법포교에 매진하시는 주지 스님과 소임자 스님들, 종무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항상하는 공기나 물의 소중함을 잊고 살 듯이, 그분들의 피땀 어린 분담금으로 종단이 운영되고 있음을 잠시 잊고 사는 듯 하다. 한 때 세상을 지배한 제국의 흥망을 조명한 ‘제국의 조건‘이란 다큐의 부제는 “군림할 것인가 아니면 매혹할 것인가!”이다. 군림(群臨)이 아닌 매혹(魅惑)만이 세상을 이끄는 진정한 힘과 지혜임을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통섭함으로써 제국이 되듯이, 우리 불교도 중생과 더불어 함께할 때에 비로소 시대와 역사의 등불과 목탁이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불교가 종교나 철학이 아닌 일종의 ‘카운셀러’이자 ‘서비스업’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둘째 날 의성 고운사로 가다가 숙소 근처 삼거리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사고 당시 짧은 순간이 마치 슬로비디오나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강렬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에어백이 터지고 연기가 자욱한 것이 심상치가 않다. 다행히 상대방 차가 우리 차 앞 범퍼를 치고 지나가 양쪽 다 크게 다친 사람은 없는 듯 하다.

그야말로 천우신조였다. 스님이 타고 있었기에 그나마 이 정도였다고는 말하지 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것은 불보살님들의 크나큰 가피이자, 얼마 전에 다녀온 카일라스 수미산 순례의 영험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조금만 늦어 차 좌측면을 그대로 들이받았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황천길로 갔을지 모른다. 동행한 스님네는 농담삼아 “급사해 향불을 올릴 뻔 했다!”며 위로와 격려를 한다.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간신히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느낌이다. 불보살님의 가피든지 조상님들의 음덕이든지 혹은 수미산의 영험이든지 더 없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다시 푸른 하늘을 보고 공기를 들이마시는 자체가 기적이고 경이로울 따름이다. 이제부터는 덤으로 사는 것이니 정말이지 열과 성을 다해 수행자로서 용맹정진하기를 서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처님께서는 “생사가 다만 호흡지간에 있느니라”라고 말씀 하셨다. 또한 옛 선지식들은 “생사의 일이 크고 무상이 신속함을 알아야 한다”라고 고구정녕히 말씀하셨다. 이를 다만 머리로 이해하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막상 직접 겪고 보니 남의 일이 아닌 가슴에 사무치는 깨달음으로 함께한다. 

일본의 하이쿠 시인 고바야시 잇사(少林一茶)는 쉰 살 생일에 “지금부터는/ 모든 것이 남는 것이다/ 저 하늘까지도…”라고 노래했다. 

나도 지금 이후로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나 다름없다. 애초부터 없는 셈 치고 더욱 치열하고 미친 듯이 자신을 속이지 않는 수행과 정진을 다짐해본다.

[불교신문3533호/2019년1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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