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의 석등을 복제하여 내 토굴 앞에 세운 것을
자명등(自明燈)이라 부른다
스스로 자기 몸을 밝히는 등불

밤새도록 나의 머리를 어지럽힌
독수리가 쪼아 먹고 또 쪼아 먹어도 계속 길어나는
프로메테우스의 간처럼
한도 끝도 없이 찐득찐득 솟구치는 그 번뇌의 너울을
꼭두새벽 한순간에 살라 먹고
황금빛 아침노을로 토해 내고
차가운 내 가슴에 따끈하게 불을 지피곤 하는
등불

-한승원 시 ‘자명등’에서
 


시인은 고통의 바다에 사는 일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인 프로메테우스의 형편에 견주어 말한다. 바위에 쇠사슬로 결박되어 낮의 시간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의 시간이 되면 또 다시 간이 회복되는 통에 영원한 고통을 받았다는 프로메테우스의 처지에 빗대어 말한다. 

그리고 어느 날 시인은 거처하는 곳 앞마당에 석등을 하나 세워 그 이름을 ‘자명등’이라 붙였다고 한다. 번뇌의 크고 사나운 물결을 물리치려고, 번뇌의 어둠을 걷어내 스스로 명명(明明)해지려고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자신을 등불로 귀의처로 삼고, 법을 등불로 귀의처로 삼아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해본다. 

[불교신문3533호/2019년1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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