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기술은 시공 초월
고통구제하는 ‘보살심’ 확장
훌륭한 방편바라밀로 활용

“어째서 보살의 ‘여환삼매(如幻三昧)’라고 합니까?”
“이러한 삼매에 머무는 보살은
모든 것을 변화로 나타낼 수 있으며,
들어가지 못할 바가 없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곳이면 어느 곳에든
머물지 못할 곳이 없기 때문이니라.”

- <광찬경(光讚經)>중에서 

 

보일스님
보일스님

➲ 당신은 시리아 한복판에 서 있다

“쾅”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온다. 노래를 흥얼거리던 어린아이의 귀여운 목소리도 이내 끊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날카로운 자동차 경적과 사람들의 비명이 한데 엉키기 시작한다. 평화롭던 시내는 곧 아비규환으로 바뀐다.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피하고 뛰어다닌다. 희뿌연 연기 속으로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중에는 어린아이도 있다. 이내 생생한 현장음 속으로 영상해설이 들려온다. “전쟁으로 시리아인 3분의1이 집을 떠나 떠돌고 있으며, 특히 아이들이 공격 목표가 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전쟁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다. 이것은 최근 “프로젝트 시리아(Project Syria)”라는 가상현실이라는 기술을 통해 제작된 영상 내용이다. 시청자가 마치 현재 직접 그 상황에 놓인 것처럼 생생한 체험이 가능하다.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고 전쟁 종식을 위한 세계인의 관심과 적극적 개입을 촉구하는 목적으로 제작됐다.

유엔난민기구에서는 유엔본부 청사 앞에서 각국의 대표들에게 가상현실 체험 공간을 마련하고 시리아 상황을 보고 느끼게 하는 행사를 했다. 이 가상현실 체험을 통해 단순히 보고서나 짤막한 뉴스화면을 통해 시리아를 보고 이해하는 방식을 넘어서서, 현실과 똑같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유엔난민기구나 각국의 대표들은 더욱 시리아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인도주의적 긴급구호에 적극적인 개입을 끌어내기도 했다.

유럽 각국을 비롯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단체나 개인들은 ‘지금 시리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기술의 발달로 언론 보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최근 ‘VR 저널리즘’도 동시에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먼 곳에 있는 시청자가 가상현실을 체험해 봄으로써 뉴스 제작자나 편집자의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에 대한 몰입도와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가상현실 기술이 시리아인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 가상과 현실, 경계를 넘나들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기술인 인공지능, 빅데이터는 현실 세계의 정보를 가상의 경험으로 확장하여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을 넘어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과 혼합현실(MR, Mixed Reaity)의 세계로 진화하고 있다. 

사실 가상현실 기술이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이미 1957년부터 모턴 하일리그(Morton Heilig)에 의해 ‘센소라마 시뮬레이터(Sensorama Simulator)’ 라는 기기가 만들어졌다. ‘경험 극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기기는 3차원 입체영상과 당시로써는 혁신적인 스테러오 시스템, 진동까지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기술 수준과는 비교가 힘들 정도였지만 말이다. 현재의 가상현실 기술은 사용자와 그 가상현실 사이의 상호작용이 중요한데,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가상현실’이라는 용어만 해도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재런 래니어(Jaron Lanier)에 의해 1987년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다.

그 후 지속해서 이 연구는 이어졌고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인 훈련목적으로 ‘바이브드(VIVED: Virtual Visual Environment Display)’가 제작되기에 이른다. 이미 프로그래밍이 된 시스템 안에서 이용자는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그 움직임에 따라 상황이 바뀌는 것이다. 물론 마이크나 헤드셋 장갑을 낀 상태로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이다. 진정한 의미의 가상현실에 가장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가상현실 기술은 기본적으로 컴퓨터상의 디지털 정보를 이용해 구축한 가상공간 속에서 인간의 오감을 활용한 상호작용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는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상황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콘텐츠 운용 기술이다. 가상현실은 ‘증강현실’과 달리 배경이나 환경 등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이미지가 가상현실이다.

가상현실은 인간의 오감을 인위적으로 자극하여, 사용자가 마치 영상 속에 직접 들어가 있는 것과 같은 현장감과 몰입감을 제공한다. 한마디로 실감 나는 매체이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통해 현실과 똑같이 또는 현실보다 더 실감나게 가상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 기술을 통해 우리는 머릿속에서 상상만 하던 일들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주 공간을 유영할 수도 있고, 이상형인 이성과 데이트를 해 볼 수도 있고,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 한복판에 있을 수도 있다. 물론 가상(假想, virtual) 속에서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기술인 인공지능, 빅데이터는 현실 세계의 정보를 가상의 경험으로 확장하여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을 넘어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과 혼합현실(MR, Mixed Reaity)의 세계로 진화하고 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서 오는 한계를 넘어 자유롭게 마치 실제처럼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술은 인간 욕망의 증장이 될 수도 있고, 자비의 화신이 될 수도 있다. 출처=www.shutterstock.com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기술인 인공지능, 빅데이터는 현실 세계의 정보를 가상의 경험으로 확장하여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을 넘어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과 혼합현실(MR, Mixed Reaity)의 세계로 진화하고 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서 오는 한계를 넘어 자유롭게 마치 실제처럼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술은 인간 욕망의 증장이 될 수도 있고, 자비의 화신이 될 수도 있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물을 볼 때, 우리의 눈이 사물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눈으로만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다. 눈과 두뇌의 상호작용에 의해 사물을 지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을 본다고 하자. 기본적으로 우리의 인식 속에서 건물은 높이와 넓이, 깊이라는 3차원 즉 입체적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우리의 망막이 인지하는 것은 높이와 넓이의 2차원까지만 포착한다. 즉 평면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깊이를 파악하여 입체적 인식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눈이 아니라 우리가 기존에 경험하거나 학습했던 정보를 통해서이다. 우리가 건물을 보는 순간, 건물이 2차원으로 눈에 비치고, 우리의 두뇌에서 3차원으로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 세계를 보는 방식이 이렇다. 가상현실 기술은 이러한 입체감을 정교하게 설계된 색의 대비를 통해 구현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간을 왜곡하거나 인간의 착시현상을 이용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불완전한 인간의 인식능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눈을 통해 외계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는 소박한 믿음이 가진 허점을 파고든 기술이라고 할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가상현실 기술이란, 화면과 실체 사이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들고 이를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가상현실을 통해 우리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을 해 볼 수가 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서 오는 한계를 넘어 자유롭게 마치 실제처럼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상상력의 확장이자, 창의력의 극대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 몸의 확대이자 확장이다. 가상현실이 하나의 매체로서 기능하게 된다. 물론 이 또한 양날의 칼과 같다. 욕망의 증장이 될 수도 있고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될 수도 있다.

마셜 맥루한(Marshll McLuhan)은 오래전에 그의 명저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에서 “미디어는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며, 미디어는 결국 인간의 확장”이라고 정의했다. 다시 말해, 가상현실이라는 미디어 즉 매체를 통해 인간은 자아를 확장해 나갈 수 있으며 그 미디어는 바로 인간의 확장된 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아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변화와 관계성이라는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불교적 관점에서는 이 기술은 마치 환상 속에 환상을 더해가고, 미망 속에 미망을 더해 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 여환자비(如幻慈悲)

“모든 유위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처럼 관할지니라.” <금강경>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존재와 현상의 속성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갈 필요성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감각기관을 절제하면서 감각의 확산을 제어하기도 벅찬데, 다양한 감각을 인위적으로 자극받는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도 좋은가. 

가상현실 세계가 자칫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하고 자신만의 자폐적 공간으로 퇴보하고, 축소된 자아가 될 우려도 공존한다. 가상현실은 ‘가상’이라는 말이 이미 예정하고 있듯이 가짜이며 임시적이고 잠정적인 상태이다. 환상임을 그리고 허망한 줄 알면서도 우리는 기꺼이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느낀다.

그 속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마음에 집착함이 없이 머물지 않을 수 있는 지혜로 ‘여환자비(如幻慈悲)’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상현실 기술의 적극적 활용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서고 세상 속으로 적극적으로 들어가 세상의 고통에 귀 기울이려는 ‘보살심’의 확장이자, 훌륭한 방편 바라밀로써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신문3533호/2019년1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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