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 생기는 순간 윤회 시작된다

내가 있단 생각 나에 대한 집착
삼계 윤회하는 가장 큰 원인돼
무아 증득하고 탐심진심 놓아야

등현스님
등현스님

둘째 집(集, samudaya)의 성스러운 진리(聖諦)이다. 고통의 원인은 함께(sam) 일어나기에(udaya) 집성제라 한다. 집기(集起)가 원어의 정확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고통의 원인은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기에 집기인 것이다. 탐욕, 싫어함, 교만, 무명, 의심, 사견 등의 잠재적 번뇌는 여러 가지 조건을 만나야만 성숙하여 고통이라는 열매를 맺게 한다. 

그 중 첫째는 근본 원인(因)이다. 고통이라는 결과에 대한 근본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인(因)인데, ‘내가 있다’라는 오해된 ‘무명’은 고통으로 이루어진 생(生)에 다시 태어나게 하는 윤회의 근본이므로 인이 된다. ‘내가 있다’는 믿음은 오온의 화합과 생멸을 보아서 끊어진다.

둘째는 여러 번뇌의 모임(集)이다. 집(集)으로써의 고의 원인이 되는 것 인데, ‘탐욕’과 ‘싫어함’ 등의 여러 가지 잠재된 번뇌가 업의 결과인 좋고 나쁜 현상들을 경험할 때 고통을 경험하므로 집(集)이라 한다.

셋째는 존재의 발생함(生)이다. 씨앗에서 싹, 줄기 등이 생겨나듯 무명의 씨앗으로 인한 애착의 싹이 욕계, 색계, 무색계중 하나의 과보를 상속해서 육도에 태어나게 하고, 태란습화의 사생에 태어나게 하기 때문에 생(生)이라고 한다.

넷째는 조건들의 연(緣)이다. 씨앗이 인(因)이 된다면, 열매를 맺게 하는 흙과 빛 같은 여러 가지 조건을 연이라고 한다. 진흙, 물, 막대, 물레 등의 조건이 화합하여 항아리가 생기하듯이 갈애와 애착 등이 고의 결과에 두드러진 조건이 되기 때문에 연(緣)이라 한다.

나무의 예를 들자면, 나무의 씨앗은 인, 거름과 태양은 집이 되고, 싹이 트면 생이고, 물은 그 나무의 싹이 성장 할 수 있는 연이 되는 것처럼, 무명이라는 씨앗(因)과 업이라는 집(集), 취착에 의한 3유의 생(生)과 갈애와 애착이라는 연(緣)에 의해 고해의 바다에서 윤회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고멸성제(苦滅聖諦)이다. 마음의 번뇌와 집착을 끊어 버리는 것을 멸성제라고 한다. 번뇌가 일어나는 상태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보고 듣고 말할 때마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탐진의 번뇌, 둘째, 대상이 먼 곳에 있을 때에도 발생하는 탐진의 번뇌, 셋째, 그 대상이 소멸하거나 사라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에도 과거의 경험들을 떠올리면서 그 대상에 집착하거나 화를 내는 경우이다. 

위 번뇌를 해결하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순간적으로 번뇌를 잠깐 멈추게 하는 방법이고, 둘째, 근원적으로 번뇌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오정심관은 순간적으로 잠재된 번뇌를 잠시 멈추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공과 무아에 대해서 완전히 터득하지 않는다면 잠재된 번뇌의 근원을 완전히 절멸시킬 수 없다. 삼계를 윤회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무명이고 무명 가운데 가장 큰 무명은 이 윤회하는 곳에 ‘내’가 있다는 생각이다.

윤회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여기에 ‘내’가 있고 ‘나의 것이 있다’라는 생각이다. ‘나’를 생각하는 순간 바로 ‘남’이 생기게 된다. ‘나와 남’이 생기는 순간 바로 윤회는 시작된다. 12연기 가운데 가장 근원이 되는 것은 무명이고, 무명은 ‘내가 있다’는 생각, ‘나에 대해 집착’하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무아에 대해서 철저히 자각하고 증득해야만 더 이상 윤회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멸성제에는 멸, 정, 묘, 리의 네 가지 양상이 있다. 첫째,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일체의 잠재된 번뇌가 다했으므로 멸(滅)이고, 둘째, 탐진치 삼독의 소멸로 인해 마음이 맑고 평화로워진 상태를 정(靜), 셋째 나없음을 알고 나에 대한 집착이 소멸해서 모든 괴로움이 다한 곳의 지극한 즐거움을 말로 표현 할 길 없으므로 묘(妙)이고, 넷째, 모든 괴로움의 원인인 윤회로부터 벗어났기에, 마음이 그 무엇에도 의지함이 없기에 리(離)라고 한다.

해탈이라는 것은 향유할 대상도 없지만 향유하는 자도 없는 상태이다. 삼계에 윤회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대상들에 대해 탐착이나 싫어함을 일으키는 것이므로, 나와 내가 경험하는 대상에 대한 탐심과 진심을 놓아버리면 그 자리가 해탈인 것이다. 

[불교신문3533호/2019년1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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