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모르고 핀 꽃은
철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철의 경계를
지우고 있는 것이다

인공으로 몸살 앓는
세상에서도 가을하늘은
유난히 높고 새파랗다

김양희
김양희

가을 활엽수는 잎을 거두며 슬슬 겨울 날 채비를 한다. 나목이 되어가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지 않고 다시 봄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무에 꽃눈, 잎눈이 자리를 잡는 것은 가을이다. 자리 잡은 꽃눈과 잎눈은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이듬해 봄에 꽃과 나뭇잎으로 피어나 여름을 나고 다시 가을을 맞이한다. 

시월 어느 날 가을을 찾아 길을 나섰다. 나들이 계획을 하자 미리 설레기 시작했으니 색다른 일이 생길 게 분명했다. 내가 찾아간 곳은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조그맣고 아름다운 섬 속의 섬 소무의도. 소무의도는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무의도의 부속도서다. 과거에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으나, 2019년 무의대교가 개통되면서 무의도까지는 차로 이동하고 소무의도는 인도교를 걸어서 건넌다. 

다리는 섬을 지우고 배가 다니는 길을 지운다. 무의도, 소무의도처럼 육지와 한 덩어리를 만든다. 그래도 섬은 섬. 소무의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려면 섬을 한 바퀴 도는 무의바다누리길을 걸어야 한다. 2시간 정도면 바다와 산을 너끈히 만끽할 수 있다. 

한여름 같은 볕이 시월 소무의도에 내리쬐었다. 태풍에 나뭇잎을 잃고 앙상하던 라일락을 비롯한 아까시나무, 복숭아, 벚나무, 이팝나무가 높은 기온이 감지되자 너도나도 앞 다투어 꽃을 피웠다.

어쩌다 가을날 양지바른 곳에서 봄꽃을 만나기는 하지만, 이미 봄에 꽃이 피고 진 나무가 가을에 또 꽃을 피우다니. 곳곳 잎이 떨어진 가지마다 소담스럽게 핀 꽃은 뜻밖에 받은 선물처럼 즐거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계절에 철없이 무더기로 핀 꽃을 바라보며 더럭 겁이 난 건 왜일까?

기온과 환경에 따라 정직하게 반응하는 식물은 지금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4월에 피는 라일락이 아니라 10월에 핀 라일락은 자연이 우리에게 빼든 옐로카드가 아닐까? 이팝나무 가로수가 가을에 하얀 꽃을 아름드리 피워 사람들에게 하는 경고도 심상치가 않다.

이상기온에 서둘러 피느라 꽃은 미처 향기를 준비하지 못했는지 아까시꽃에 코를 갖다 대도 아무런 냄새가 없었다. 기후변화에 혼란스러워하는 나무를 보며 다음에는 어떤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게 될지 두려웠다.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는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의 말을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된다. 그녀는 스웨덴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16세의 글로벌 환경지킴이다.

세계가 그녀를 주목한다. 그 까닭은 우리 모두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이며 해결책도 다 알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향한 시위다. 기후변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안다면 지금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이 생활 그대로 해야 옳을까? 

가을 소무의도에 핀 봄꽃이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구경거리로 보일지 몰라도 나무는 자기가 받은 충격의 표현이다. 그 가지는 내년 봄에 꽃을 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모작을 하듯 한 해에 두 번 꽃피는 나무로 적응할까? 분명 생태계에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어 경계가 허물어진다면 사람은 언제까지 안전을 보장받을까? 

소무의도에서 때 아닌 봄꽃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봄꽃은 봄에 피어 향기를 흩날리고, 가을엔 가을꽃이 지천으로 피어야 한다. 철모르고 핀 꽃은 철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철의 경계를 지우고 있는 것이다. 인공으로 몸살 앓는 세상에서도 가을하늘은 유난히 높고 새파랗다. 

[불교신문3532호/2019년11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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