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없는 대비심으로 모든 번뇌 끊으려 하노라”

여덟 마리 호랑이 생명 구하려고
자신 몸 보시한 마하살타 왕자
백제 고구려 그림과 유사성 보여
일본 나라 호류지에 소장된 유물

비단벌레 날개 붙여 장식 ‘눈길’
바라문 옷 고구려 벽화와 비슷해
익산 미륵사지 출토 대나무 닮아
고대 한국불교미술 되짚는 시금석

호류지의 ‘불감’인 다마무시즈시 수미좌 향우측의 사신사호도. 석가모니 본생담을 주제로 하고 있다.
호류지의 ‘불감’인 다마무시즈시 수미좌 향우측의 사신사호도. 석가모니 본생담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고대 도시 나라(奈良)에는 참으로 많은 사원들이 있다. 588년 백제에서 건너온 장인들이 지었다는 일본 최초의 사찰 아스카데라(飛鳥寺)를 비롯하여 세계 최대의 청동불상이 모셔져 있는 도다이지(東大寺), 사슴이 뛰어다니는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고후쿠지(興福寺) 등등. 그렇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사찰을 꼽으라 하면 역시 호류지(法隆寺)가 아닐까 싶다. 

607년 쇼토쿠태자가 창건한 호류지는 670년에 화재로 전소된 후 680년 이후 금당 등이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아름다운 소나무 길을 따라 남대문을 지나 중문에 이르면 거대한 금강역사상이 진정 사찰에 이르렀음을 느끼게 한다. 국보로 지정된 긴 회랑을 따라 경내에 이르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서원가람(西院伽藍)의 목조건출물인 금당과 오중탑이 동서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금당 내에는, 안타깝게도 1949년에 발생한 화재로 인해 일부 밖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고구려 승려 담징(曇徵)이 그렸다고 전해오는 벽화와 623년 쇼토쿠태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한반도계의 도리불사(止利佛師)가 만들었다는 금동석가삼존상(623년)이 눈에 띈다. 백제 위덕왕이 부왕 성왕을 위해 만들었다는 동원가람(東院伽藍)의 유메도노(夢殿) 구세관음상(救世觀音像)과 대보장전(大寶藏殿)에 소장된 백제관음도 호류지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문화재이다.

2m가 훌쩍 넘는 갸날픈 신체에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운 비례를 자랑하는 백제관음은, 앙드레 말로가 ‘일본이 침몰해도 이것만은 남기고 싶다’고 찬탄할 만큼, 최고 중에서도 최고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백제에서 전래된 허공장보살상(虛空藏菩薩像)이라고 전해져 왔지만 1911년 아미타화불이 있는 보관이 발견되어 지금은 백제관음으로 불리우는 것을 보면, 고대 한반도의 문화가 일본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를 실감케 한다. 
 

불상을 모시고 예불하는 불감의 일종인 다마무시즈시.
불상을 모시고 예불하는 불감의 일종인 다마무시즈시.

대보장전에 전시된 유물 중 백제관음과 함께 주목할 만한 것은 다마무시즈시(玉蟲廚子)이다. 다마무시즈시는 실내에서 불상을 모셔놓고 예불하는 주자[불감]의 일종인데, 윗부분 가장자리의 금동제 장식금구 아래에 다마무시, 즉 비단벌레의 아름다운 날개를 붙여 장식하였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그런데 비단벌레의 날개 장식만큼 다마무시즈시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바로 주자의 표면에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들이다. 

주자는 지붕으로 덮인 궁전부와 중앙부인 수미좌부(須彌座部), 그리고 아래의 대좌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자 표면에는 주칠 혹은 녹칠로 여러 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다. 궁전부에는 갑옷을 입고 머리를 휘날리며 서있는 신장상 2구와 보살상 2구가 그려져 있으며, 수미좌 정면에는 하늘을 나는 비천(飛天)과 좌우로 돌출한 바위 위에서 손에 병 향로를 들고 앉은 비구 2인과 향로가 그려져 있다. 또 궁전부 뒷면과 수미좌 뒷면에는 영산회도(靈山會圖)와 수미산도(須彌山圖) 등 다양한 주제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주자 속에 모셔진 부처님을 채색으로 찬탄하는 듯 하다.

다마무시즈시를 대표하는 그림은 단연 수미좌의 좌우 측면에 그려진 그림이다. 두 그림 모두 석가모니의 본생담을 주제로 하였는데, 향우측에는 사신사호도(捨身飼虎圖), 향좌측에는 시신문게도(施身聞偈圖)가 그려져 있다. 먼저 사신사호도는 <금광명경(金光明經)> 사신품(捨身品)에 실려 있는, 배고픈 어미호랑이와 7마리의 새끼호랑이를 위해 자신의 몸을 보시한 마하살타왕자 이야기로, 모두 3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쪽에는 마하살타왕자가 옷을 벗어서 나무가지에 거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중간에는 왕자가 두 손을 아래로 향하고 뛰어내리는 모습, 아래쪽에는 땅에 떨어져 누워있는 왕자의 몸을 호랑이들이 둘러싸고 먹는 장면 등이 연속적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에서 왕자가 옷을 벗어 나무가지에 거는 장면은 왕자 마하살타는 호랑이 있는 데로 도로 가서 옷을 벗어 대나무 가지 위에 걸어놓고 이렇게 서원을 세웠다.

‘나는 이제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며, 가장 훌륭한 위없는 도를 증득하려는 것이며, 흔들리지 않는 대비심으로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며, 보리를 구하여 지혜있는 이의 찬탄을 받으며, 삼계(三界)의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고 죽는 무서움과 모든 번뇌를 끊으려 하노라’는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또 중반부와 아래쪽의 두 팔을 아래로 내리고 뛰어 내리는 장면과 호랑이가 마하살타의 몸을 먹는 장면은, 배고픈 호랑이를 위해 몸을 던졌으나 호랑이가 기력이 없어 먹지를 못하자 다시 대나무가지로 목을 찔러 피를 내게 한 후 뛰어내렸더니 호랑이가 마하살타의 몸을 먹었다는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아래를 향하여 몸을 던지는 마하살타태자는 두 손을 아래로 모아 ‘다이빙’하듯이 뛰어내리고 있다. 마치 나뭇잎이 떨어지듯 유연하다. 산에서 뛰어내린 마하살타가 땅바닥에 누워있고 그 주위에 호랑이와 7마리의 새끼가 마하살타를 둘러싸고 살을 뜯어먹는 장면에서는 처절함보다 숭고함이 느껴진다. 이 장면이 바로 마하살타본생도의 하이라이트인 사신사호 장면이다.
 

향좌측의 시신문게도.
향좌측의 시신문게도.

사신사호도의 맞은 편에는 시신문게도가 배치되어 있다. 전생에 바라문으로 태어난 부처님이 설산에 들어가 수행할 때 게를 듣기 위해 나찰로 변신한 제석천에게 자신의 몸을 보시한 시신문게는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성행품(聖行品)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본생담이다. 바라문본생, 설산동자본생(雪山童子本生)이라고도 한다.

그림은 하단부에서 향좌측 상단으로, 다시 우측으로 전개되며 그려져 있다. 하단은 대나무를 사이에 두고 바라문이 나찰과 대화하는 장면으로, 죽림 가운데에 서서 괴이한 짐승의 얼굴을 한 나찰은 머리칼이 곤두 서 있는 모습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게를 읊으면서 바라문에게 다가가고 있으며, 긴 머리털을 날리며 끝단이 풀어헤쳐진 바지를 입은 바라문은 왼손을 내밀고 오른손은 허리에 대고 암반 위에 서 있다. 

이 장면은 <대반열반경> 성행품의 “그때에 제석천왕이 몸을 변하여 나찰이 되니 형상이 흉악하였다. 설산에 내려가서 멀지 아니한 곳에 섰으니 그때에 나찰은, 두려운 마음이 없고 용맹하기 짝이 없으며, 조리있는 변재와 맑은 음성으로 지난 세상의 부처님이 말씀한 반 게송을 말하였다. ‘변천하는 모든 법 떳떳치 않아 모두가 났다가는 없어지는 법(諸行無常 是生滅法)’. 이 반 게송을 말하고는 앞에 섰으니 얼굴이 험상스럽고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사방을 노려보았다”는 내용이다.

중간에는 바라문이 나찰에게 자신의 몸을 보시하기로 하고 나머지 반 게, 즉 ‘낫다 없다 하는 법 없어지면 그때가 고요하여 즐거우리라(生滅滅已 寂滅爲樂)’는 게를 들고 벽 위에 쓰는 장면, 향우측 상단부에는 산 위에서 뛰어 내리는 바라문과 제석천으로 변한 나찰이 산위에서 뛰어 내리는 바라문을 받기위해 두 손을 내밀고 기다리는 모습 등이 보인다. 

사신사호도와 시신문게도에는 백제 및 고구려 그림과 유사한 점도 엿보인다. 사신사호도에서 대나무를 동일 수평상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한 모습은 진파리 1호분 현실 북벽의 산수현무도(山水玄武圖)에도 보이고, 태자가 옷을 거는 삼각형 잎의 나무는 내리 1호분 산악도의 나무와 유사하다.

또 시신문게도에서 바라문이 입은 옷은 5세기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볼 수 있고, 나찰의 모습 또한 고분 벽화에 그려진 역사상과 유사하다. 대나무의 모습은 익산 미륵사지 출토 대나무 그림과도 비슷하다.
 

백제계 일본인인 쇼토쿠태자가 창건한 호류지. 이 절에 있는 ‘불감’인 다마무시즈시는 백제관음, 구세관음상, 금동석가삼존상, 금당벽화와 함께 한반도 불교가 일본에 끼친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계 일본인인 쇼토쿠태자가 창건한 호류지. 이 절에 있는 ‘불감’인 다마무시즈시는 백제관음, 구세관음상, 금동석가삼존상, 금당벽화와 함께 한반도 불교가 일본에 끼친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늘씬한 체구에 허리를 바깥쪽으로 내밀고 상체를 안쪽으로 굽힌 삼곡 자세(三曲姿勢)를 취한 인물들의 유연하면서도 양감 있는 몸, 천의가 뻗침 없이 몸 옆으로 길게 늘어져 전체적으로 늘씬해 보이는 인체는 중국의 수·당나라 초기 양식을 받은 백제의 7세기 불상 양식과도 상통한다. 비단벌레의 날개로 장식하는 기법 또한 삼국시대에 성행했던 기법인 것을 보면 다마무시즈시의 본생도는 일본에 정착한 고구려 또는 백제계 화가들이 그렸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구려 승려 혜자(惠慈)의 제자이자 한반도의 불교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백제계 일본인인 쇼토쿠태자(聖德太子, 574〜622)가 창건한 호류지에 남겨진 다마무시즈시는 백제관음과 구세관음상, 금동석가삼존상, 금당벽화 등와 함께 우리의 고대 불교미술을 되짚어볼 수 있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신문3532호/2019년11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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