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0주년 맞이 특별기획’
천년사찰의 나이테 부도밭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조각이 섬세하고 조금 큰 부도가 다른 부도들을 아우르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서산대사 부도(보물 제1347호)다.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조각이 섬세하고 조금 큰 부도가 다른 부도들을 아우르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서산대사 부도(보물 제1347호)다.

 

해남 대흥사 부도들은 유난히 눈에 잘 뛴다. 일주문을 지나 사찰 중심영역에 들어서기 전에 위치한 것이 첫째 이유라면, 두 번째 이유는 그 규모와 미적 아름다움이다.

부도들 가운데는 그 키가 2.6m에 이르는 것도 있고, 작은 것은 어깨쯤에 오기도 한다. 부도밭 안에 들어서면 경건하고 묵직한 선율이 시각적으로 넘실거린다. 그 근원의 힘은 산과 산사를 아우르며 후학들을 경책하는 울림이다. 웅장하며 당당하다. 일반 관람객들의 접근이 용이한 만큼, 보호를 위해 문과 담장을 두르고 있다. 
 

몇몇 부도에는 다양한 형상의 조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부도밭’이란 호칭에 우려를 표한 독자의견이 있었다. 부도전이라는 좋은 말을 두고 부도밭이라니, 물론 옳은 지적이다. 부도라는 말도 스님의 이름을 알 수 없을 때는 승탑으로, 이름이 밝혀지면 시호만 사용해 이름 뒤에 ‘탑’을 붙여 부르는 것이 보다 바른 표현이다.  

더 귀하고, 더 정확한 표현을 두고 굳이 이 연재물에서 선택한 표현은 부도밭이다. 밭은 바탕이나 토대의 비유적 표현이기도 하며, 골과 이랑이 이어지며 뭇 생명들의 자양분을 품고 있다.
  

정면에서 바라봤다. 웅장하고 단정한 모습, 법당에서 예불을 올리고 있는 스님들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입구 옆에는 안내판은 80여기에 이르는 부도와 탑비 가운데 부도 7개 위치와 스님 행적이 부도 특징과 함께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처음 안내판에 등장하는 부도의 주인공은 서산대사다. 스님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0세가 넘은 노구에도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웠고, 훗날 그의 제자들이 이곳 대흥사에 정착하면서 세웠다고 설명한다.

실제 서산대사는 묘향산 보현사에서 입적에 들었지만 백두대간 끝자락 해남 대흥사에 의발(가사와 공양 그릇)을 전하며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이며 만년 동안 흩뜨려지지 않을 터”라고 했다.
 

측면 오르막으로 물러서니, 담장은 낮아지고 부도들은 촘촘히 겹쳐 보인다.

가장 마지막 설명은 초의선사다. 초의선사는 대흥사 일지암에서 다도와 선을 분리하지 않는 다선일여(茶禪一如)로서 후학들을 지도했다. 담장 밖에서 조금 더 잘 보기위해 까치발로 안내판의 부도 위치를 확인하며 설명을 읽는, 찾아보는 재미에 빠진 참배객들도 종종 보인다.

풍채나 생김새는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계보에 맞춰 도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부도들은 보면 큰절의 대중생활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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