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 상월선원 천막결사 취지 및 경과

20192
전국 선원이 동안거의 문을 열자 정진한 대중의 성만을 모두가 공경으로 맞이합니다. 겨우내 극심한 추위속에도 끝내 얼어붙지 않았던 내면의 강기가 서서히 얼음을 녹여내어 생명의 흐름을 다시 세상에 알리던 순간입니다아쉬움과 감동이 섞인 정진의 수확을 안고 나서던 시기에,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께서는 가장 낮은 곳에서도, 다 놓아버린 곳에서도, 세상이 바라보지 않는 곳에서도 틀림없이 공부가 있을 것이니, 승가 본연의 모습으로 차별없이 정진해보자는 뜻을 만나는 대중마다 제안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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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온 산천에 화려한 꽃들이 만발하였지만, 보고 싶은 가족이 있어도 가보지 못하는 사람, 풍족한 현대생활의 이면에 가려진 어둡고 차가운 그늘에 갇혀 있는 사람들, 그 속에서 수행의 본래 가치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나아가 가장 보잘 것 없는 곳에서도 무언가를 찾을 것이 있다는 의심은 점차 기대가 되어 확장되어 갑니다노숙이 빈번한 서울역 광장, 인권의 존엄과 평등으로 모두에게 열려있는 광화문 광장을 정진의 장소로 우선 정하여 논의에 논의를 거듭하고 점검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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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만류와 걱정이 뒤섞이기 시작하지만, 이 또한 많은 대화와 고민 속에서 정진의 화두로 녹아들게 됩니다. 일생을 정진한 수좌와 적지 않은 시간을 종단 행정에 봉직하던 대중이 속속들이 동참의사를 밝혀오지만, 부득이 거창하게 다 함께 할 수 없음을 정중하고 소탈하게 가다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즈음 서울역과 광화문이 뜻과 달리 진행상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어 탑골공원 원각사지로 변경하여 정진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검토하고 준비 단계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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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의 끝에 오는 깨달음과 희열, 그리고 회향의 의미를 찾겠다는 서원은 부처님을 따르겠다는 일념이기에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5월의 푸른 신록과 같이 생각의 가지는 넓어지고 푸른 잎들은 활짝 펼쳐지게 됩니다. 정진 대중과 외호 대중이 자진하여 한걸음씩 앞을 내딛으며 마음을 다지게 됩니다. 선대의 뜻과 민족의 역사가 조화로운 원각사의 숭고함을 다시금 살려내어 우리 사회와 함께 생기롭게 호흡할 수 있도록 실제 가능한 검토를 덧붙여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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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 전례가 없는 수행의 방편이기에 현실적 장애들이 발생하고 발심자들은 장마가 쏟아지듯 고심에 고심을 거듭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국가와 국민을 위하겠다는 선대의 거룩한 기운이 오롯이 담겨 있는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직계후손이 가까이에서 모시지 못한 잘못을 경책하고 다시금 사람과 함께하고 온 생명에게 자비와 광명을 비춰주는 삶의 바탕으로 자리하게 해야겠다고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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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간의 약속, 부처님에 대한 맹세는 사라지지 않는 다는 걸 확인합니다. 원각사 현장을 답사하고 과연 선대의 숭고한 유산이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생명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수행자의 발심으로 선대의 뜻을 되찾고 불은에 보답하며, 이를 통해 시민과 사회에 고스란히 나누어 줘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천막에서 정진하는 등, 최소한의 의식주만으로 안거에 들어갈 것을 정하고 수행정진에 방해되는 것은 모두 제거할 것임을 교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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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의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탑골공원 원각사지 또한 여러 사정으로 정진의 장소로써 여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9인의 정진 대중이 정해지고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와 같이 의지는 더욱 강렬해 집니다. 아직 비어있는 곳, 이제 금새 가득 채워질 곳에, 온전한 생명이 편안하게 깃들어 자리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는 의지는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다시 가장 낮은 곳 가장 허름하지만 가장 바탕이 되는 곳을 찾고자 숙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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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의 마음가짐이 변함없기에 정진의 장소를 물색하는 일은 즐겁기만 하고 고민의 아픔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허공으로 채워진 허허벌판이지만 생명의 바탕인 대지로서 새로운 삶의 터전이 시작하는 위례신도시 예정지를 적임지로 결정합니다. 마침 강남 봉은사의 사부대중이 사회와 시민에게 평화와 행복을 널리 전하고자 신심과 원력을 모아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지리산 화엄사의 여래부처님께서 친히 이곳에 나투시겠다고 하시니 무량한 마음이 영글어가고 정진의 격려가 크게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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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다가오자 다급해지지만, 자그만 결실의 단초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간의 고민과 방향을 몇 번이고 다시 들춰보아도 결국 너무 쉽고 간단명료함을 알게 됩니다. 서로의 마음이 어우러져 낯선 형태의 정진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씻어냅니다. 우주 대자연과 구분이 없어 스스로 완전히 일체할 수 있으니 상월선원이라 이름을 정하게 됩니다. 종정예하의 확고한 가르침을 받고 선원 수좌의 격려를 경건하게 받아 정갈하게 다듬고 이제 이심전심으로 청규를 제정합니다. 복덕을 나누는 자리는 서둘러 양보하고 아픔을 나누는 자리는 먼저 찾아 끝까지 앉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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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의 기운이 가득한 부처님을 정성스레 모시어 장엄한 봉불식을 거행하고 광명이 들어차는 상월선원의 문을 활짝 열게 되었습니다. 오늘로써 동참하신 모든 대중은 드디어 이 문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곳은 사방이 문이니 누구나 마음과 발길이 자유롭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서로가 서로를 열어주는 대자유의 문이 열렸습니다극한의 단계에서 한줄기 빛을 찾아 그 속에서 자유롭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환한 세상을 고루 나누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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