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수좌가 보여주는 공부의 깊이
젊은 수좌가 보여주는 공부의 깊이
  • 장영섭 기자
  • 승인 2019.11.01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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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출가한 종교학도
방황 끝에 얻은 삶의 의미
“내 손에 쥔 등불을 끄면
달빛이 환하게 드러난다”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원제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세상이 가짜 같아 삶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고 한다. 3수 끝에 명문대 근처까지 도달했는데, 삶은 여전히 힘들었고 거짓투성이였다. 자해도 해봤다. 군대를 제대한 후 여자친구에게 버려지면서 출가를 결심했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법전대종사의 상좌로 들어갔는데, 선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세계일주를 떠났다.

2년여 간 티베트를 시작으로 5대륙 45개국을 돌았다. “수많은 고생을 한 후에야 수행이 비로소 훨씬 수월해졌다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으리라를 삶의 좌우명으로 삼아서 그런 모양이다. 책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에 관한 마음의 여행을 기록하고 있다.

2006년 해인사로 출가하여 2011년부터 틈틈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수행기를 올렸고 그걸 중심으로 생애 첫 책을 냈다.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 나와 세상에 속지 않고 사는 법>의 저자는 마흔 줄을 갓 넘긴 나이다. 종교학과 출신으로 그만큼 사색이 많은 성격이다.

청년시절 누구보다 고민이 많았고 방황도 진했다. ‘힐링(Healing)'이 아니라 '킬링(Killing)' 법문을 표방한다. 날카로운 직언으로 진실을 보게 한다는 선가(禪家)의 용어인 활인검(活人劍)을 떠올리게 한다. 책은 따뜻하지 않은 대신 솔직하다. 지속적인 번민과 세파 속에서 얻어낸 나름의 성찰을 담아냈다.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 나와 세상에 속지 않고 사는 법'의 저자 원제스님이 10월30일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책을 설명하고 있다.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 - 나와 세상에 속지 않고 사는 법'의 저자 원제스님이 10월30일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책을 설명하고 있다.

누구나 인생의 답을 찾는다. 저자 역시 그래서 불교 수행자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해답은 오지 않고 좌절과 착각만 왔다. 문득 자신이 좇는 행복이 사실은 허상일 수 있다는 통찰이 밀려왔다.

사람은 지 생겨먹은 대로만 살아도 문제없다라고 말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제가 힐링보다 킬링을 주로 하게 되는 이유에는 ()’이라는 공부 방식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선은 의심의 수행입니다. 눈앞의 감각 대상과 경험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는 것이며, 거리를 두는 것이고 속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원의 정통수행법은 간화선이고 간화선의 핵심은 화두를 의심하는 것이다. 킬링은 죽인다는 뜻이다. 내가 아는 것, 알고 있다는 믿는 그것, 내가 지금 애지중지하며 붙잡고 있는 것을 없애는 것이다.

원제스님은 그것이 완전히 멈춰지고 사라질 때 비로소 진짜 나, 진짜 가야 할 길이 보인다고 말했다. ‘마치 어두운 밤 내가 들고 있는 등불을 껐을 때 달빛이 환하게 드러나는 것처럼이라는 수사를 쓰고 있다.

진리는 찾는 것이 아니라 되는것이란 결론이다. 책의 제목이 이걸 보여준다. 행복을 소유하고 쟁취하기보다는 나 자신이 누군가의 행복이 되는 것이 인생의 참다운 의미다.

고정된 실체란 없습니다. 실체화라는 망념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나로 향한 편중된 집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렇게 그릇된 질문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사람과 세상은 이미 그대로 답입니다. 질문한다면 고민이지만, 답이기에 누리는 것입니다. 답은 펼쳐진 것이고, 확인하는 것이고, 누리는 것이고, 써먹는 것입니다. 답은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잘못된 질문이 멈춰지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답으로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작고 좁은 이기적인 에게서 벗어나 온 우주, 전체로서의 큰 나’, ‘참나로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진정한 자유는 자유에 집착하지 말아야만 조금이나마 이뤄진다는 통찰 속에서, 제법 쓸 만한 어른이 되어간다.

물론 어떤 말들로 충고하고 위로하든 인생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견디는 것이 전부라고요(195).” 저자를 성장시킨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는 죽이고 싶었던 자를 끝내 죽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경험이다.

저자는 들끓었던 분노를 인내로써 이겨내며 인생은 오직 버텨내야 하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내가 이룰 수 있는 성취는 없습니다. 오직 인연 따라 변화하는 상황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알맞은 방식으로 대응해 나갈 수 있을 뿐입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깨달음이 성급하지 않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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