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귀에 
바람을 놓고

귤꽃
흐드러져

하얀 날
파도소리 들으며
긴 편지를 쓴다.

-한기팔 시 ‘서귀포 2’에서
 


마당의 한쪽 귀퉁이에 바람이 지나가고 있다. 귤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으니 그 바람결에 귤꽃의 향기가 은은하게 실려 오는 것만 같다. 꽃이 피는 때이니 일광(日光)이 좋고, 따사롭고, 눈에 부시었을 것이다. 그때에 시인은 먼 곳에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편지를 쓴다. 

이 시는 시행과 시행의 호응이 매우 자연스럽다. “하얀 날”이라는 시구에서의 ‘흰빛’은 귤꽃의 채색과 환하고 밝은 볕, 그리고 파도의 포말 이 모두를 두루 생각하게 한다.

또한 “긴 편지”라고 쓴 대목에서는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의 그 이동 거리와 편지를 쓰는 시인의 마음에 자리 잡은 이러저러한 사연의 길이 혹은 그리움의 크기를 동시에 염두에 두게 된다. 이 시는 서귀포가 고향인 한기팔 시인이 박용래 시인에게 보낸 시로 알려져 있다.

[불교신문3531호/2019년11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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