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가는 화엄경] <83> 입법계품(入法界品)㊱
[행복으로 가는 화엄경] <83> 입법계품(入法界品)㊱
  • 원욱스님 공주 동학사 화엄승가대학원 교수
  • 승인 2019.11.02 2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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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보살행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다

대자대비 마음으로 이뤄낸
지혜와 선근, 중생이익 위해
아낌없이 쓰는 교수 스님들
바로 이 시대 난승지 수행자
원욱스님
원욱스님

선(禪)수행을 통한 삼매를 성취하여 부처님의 음성바다에서 해탈을 성취한 적정음해(寂靜音海) 밤의 여신은 십지의 제5 난승지 선지식으로 선정바라밀을 중심으로 나머지 9개 바라밀을 닦는 분이다. 난승지는 4지 염혜지에서 번뇌를 끊어내고 무명의 어두운 길을 넘어서 중생을 위한 자비를 실천하는 난코스의 경지다.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할 터닝포인트며, 보살수행자의 기본기만 튼실하다면 당연히 넘을 수 있는 코스다.

무엇이 기본기인가? 고통에 빠진 중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해주려는 마음이다. 이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평등한 마음이 갖추어지고, 사랑과 미움으로 나타나는 차별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기본기를 위해 모든 존재하는 학문, 기술, 예술의 세계를 다 익혀서 중생교화방편으로 삼아야 한다. 

나는 요즘 동학사 승가대학원의 교수로 있으며 학인들에게 “공부는 내가 할 터이니 와서 들으라”라고 말한다. 스님들은 공부를 왜 하는가에 대한 답이다. 듣고 보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수행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두고 나는 온갖 학문과 예술과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느끼며 감동받은 것을 비유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전국에 학인을 지도하는 교수사 스님들 모두가 난승지 수행자이며, 선지식일 것이다. 말한대로 수행하기 위해 뼈를 깎는 수행을 하기 때문에 교수사가 되기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다. 사실 이것은 자리이타의 경지로 가는 모든 불자가 갖추어야 할 모습이다.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이뤄낸 지혜와 선근을 중생의 이익을 위해 아낌없이 써야 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생각과 생각 속에서 엄청난 환희가 일어나 온 세상을 장엄하는 해탈문(念念出生廣大喜莊嚴解脫門)을 이루었답니다.” “성자시여, 그런 해탈문을 얻으려면 무슨 선업을 지어야 하며, 어떻게 착한 업의 결과가 제공한 상태인 경계(境界, One`s condition given by karma)를 지나가며, 무슨 방편을 일으켜야 하며, 어떻게 관찰을 일으켜야 합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나는 먼저 청정하고 평등을 좋아하는 마음을 내었으며, 모든 미세 먼지들과 이별하듯 이 세상을 청정하고 견고하게 장엄하리란 생각을 하며, 물러남이 없는 즐거운 마음을 냈습니다. 나를 만나는 모든 중생들에게 근심과 괴로운 고뇌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을 일으킨 것은 그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기쁨을 누리게 해 줄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어려운 보살행을 권하면서도 누구나 할 수 있다며 당당하게 권하는 자신감이 바로 적정음해주야신의 매력이다. “어떤 중생이 성질을 자주 부리면 나는 그에게 부처님의 참는 바라밀에 관한 가르침을 말해주고, 게으른 중생에겐 청정하게 노력하는 정진바라밀을, 번뇌망상이 많은 중생에겐 선정바라밀을, 지혜 없는 이들에겐 부처님의 지혜를 닮아가는 반야바라밀을, 어떤 중생이 육신이 온전하게 갖추지 못함을 보면 나는 그에게 반드시 법을 설해 여래의 청정한 육신을 지니게 해줍니다.

가난하고 불평등한 삶을 사는 중생에겐 법을 설하여 보살의 공덕인 보배창고와 평등한 삶을 이루게 한 것은 모두 한량없이 법보시로 그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삶을 선물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이루어질 때, 나는 마음이 너무도 편안하고 기뻤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충분히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은 첫 번째 과제인 불교의 사업(事業)이다, 물론 사업의 결과가 금방 결실을 맺을 수는 없겠지만 시작은 반드시 해야 한다. 또, 어떻게 일체법을 관찰하고 대환희를 내는 ‘해탈의 관찰’에 대해 들려준다. 

“선재여, 나는 항상 일체 보살들이 도량에 모여 온갖 원(願)과 행(行)을 닦으며 청정한 몸을 드러내어 항상 광명으로 빛나는 것을 관찰합니다. 여래께서 매 순간 큰 광명을 놓아 우주 법계에 가득하심을 관찰하며 그 광명이 한량없는 부처님 세계의 미진수 광명이 되어 모든 중생들의 괴로움을 소멸시킴을 두 눈으로 보게 될 땐 정말 너무 환희롭습니다.”

적정음해 밤의 신은 선재에게 보살수행자가 중생위한 사업을 성취하고 난 뒤 마주치는 해탈의 관찰 뒤에 그 경계(境界)를 어떻게 넘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이 해탈은 끝없이 온갖 법계의 문에 널리 들어가며, 다함없이 온갖 지혜의 성품을 지닌 마음으로 평등하게 대하며, 마치 영상과 같은 것은 일체 지혜와 서원의 광명에서 생겨나 중생의 마음을 따라 비추며 나타낸다. 이 해탈은 큰 불처럼 중생들의 탐애의 물을 말려주고, 물처럼 중생을 가엾이 여겨 모든 것을 적셔 생명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여러 비유로 설명했으니 뜻대로 잘 생각하고, 잘 따라하여 속히 해탈하시라.”

선재동자는 두 손을 모아 존경의 예를 올리며 어떻게 수행해야 이 해탈문을 얻느냐는 질문에는 열 가지 법장(法藏), 즉 십바라밀행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보살의 삶은 언제나 일체중생을 보호하고 관찰하여 교화하는 것이 일이다. 그것이 바로 보현행의 삶이며 그 길은 반드시 십바라밀은 기본으로 하여 시작되는 것이다. 

[불교신문3531호/2019년11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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