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고 있는 깨달음은
공간적 장소이며 시간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된
행위를 또 끊임없이 만든다
이 길이 바로 수행자 길이다

조철규
조철규

모든 길은 수평과 수직에 있다. 모든 생명 또한 공간과 시간에 맞물려 있다. 어차피 모든 생명이란, 운명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태어났다. 이 운명은 본능적으로 더 넓고 더 높은 곳으로 지향하고 있다. 그 본능을 쫓아가는 길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이다. 고로 행위자체는 하나의 깨침이 된다. 

즉 행위적 직관이 ‘대원경지(大圓鏡智)’이다. 하지만 진정한 ‘대원경지’란 시간과 공간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런 까닭에 티끌 하나, 한 찰나도 나로부터 이 우주가 벗어나 있지 않다. 따라서 직관(直觀)에서 가지는 행위는 일체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가고 있는 ‘깨달음’은 공간적 장소이면서 시간적 흐름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된 행위를 또 끊임없이 만들고 있다. 이 길이 바로 ‘수행자(修行者)’의 길이다. 이 길로부터 모든 것은 생성되었다가 소멸되고 있다.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일체의 종자가 이곳에서 나왔다가 이곳으로 가고 있다. 

이 길은 그 누구도 이 길을 벗어나 있지 않다. 생(生)도 본래의 길이고 멸(滅)도 본래의 길이기에 모든 것은 하나의 길이다. 한 길이다. 한은 크다는 뜻으로 한 길은 크고 높다. 이것이 ‘수행자의 길’이다. 즉 수행자의 길은 깊고 높다. 한없이 넓고 크다. 끝이 없다. 

 우리는 차별을 ‘티끌이나 진(塵)’이라 일컫는다. 보통의 티끌은 당연히 부정되는 번뇌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 티끌은 본체를 주체로 하여 일어나는 것이므로 티끌티끌마다 빛을 발하며, 한 티끌이 일어나면 전체가 일어난다.

하나의 티끌 속에도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티끌이 현실 세계에서는 차별과 차별의 관계이다, 다시 말해 차별과 차별의 법계(法界)이다. 그래서 이 세계는 걸림 없는 세계가 아니므로 걸림이 있다. 

이 세계에서는 모두가 자기를 주장하고 내세우려 하므로 부딪치고 있다. 하지만 하나를 가지고 전체를 거두기 때문에 차별의 하나하나는 어떠한 걸림도 없다. 하나하나가 진실로 본체이어서 우리가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기고 마음 한 번 내는 것, 자체가 은혜이다. 그때 현상은 나의 행이고 나의 이상이다.

그런 나는 나만의 색깔과 나만의 빛이 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여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고 가능성을 찾아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70을 넘긴 나이로 세월에 기대어 일신의 안위만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어느 순간 나를 멈추게 하고 있다.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더 멀리 더 높게 더 크게 나아갈 수 있는 자만이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귀향할 수 있다. 이 길은 더 멀리 보고 더 높게 보고 더 크게 보기 위하여 나아가는 길이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고 일어나면 길을 향해 걸어야 한다. 더 높게, 더 멀리, 더 크게, 목전(目前)의 일에 매달려 천착(舛錯)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수행자의 자세이다.

나는 10월15일 최고령으로 한옥학교에 입교하여 6개월간의 교육과정을 밟고 있다. 내년 3월25일 수료한다. 2020년 4월이면 내 손으로 집을 지을 꿈에 부풀어 있다. 세수70을 넘겼으나 이제라도 내 몸에 맞는 옷을 직접 재단해 입고 직접 지은 농작물로 끼니를 내 손으로 조리해 먹는 즐거움으로 살고 싶다.

직접 집을 설계하고 직접 지은 집에서 내 손으로 정성스레 집 안팎을 단장하는 재미로 살고 싶다. 그리고 동료들을 곁으로 불러 모아 어울리어 글을 쓰는 즐거움으로 지내고 싶다. 수행이란 이처럼 주된 일상(日常)이 의식주(衣食住)이다. 

수행만큼 풋풋하고 아름다운 덕목이 없다. 

[불교신문3530호/2019년10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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