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월드가 운영 중인 스테판·문덕데이케어센터에서 10분 거리인 필리핀 산페드로시 모나크(Monark)라는 작은 동네에 지난 10월17일 큰 불이 발생했습니다. 아이들의 장난으로 침대에 옮겨 붙은 불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온 동네가 전소된 것이죠. 저는 다음 날, 소식을 듣고 바로 화재현장과 마을주민들이 모여 있는 임시대피소를 방문했습니다. 현장은 대부분의 집들이 전소되고 여전히 연기가 곳곳에서 올라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대피소에는 화재 피해를 당한 200여 가구 중 95가구, 총 446명의 주민들이 모여 있지만 방이 42개뿐이라 2~3가족이 같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급히 챙겨 나와 한쪽에 쌓아 놓은 옷가지들과 살림살이들이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실감케 했습니다. 암담한 상황이지만 한 방에서 서로 보듬고 챙겨주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가히 그들의 슬픔을 알 수 없었습니다.
 

갑작스런 화재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을 위해 긴급재해 구호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대피소에서 아이들을 위한 긴급구호 물품을 전달하는 모습.
갑작스런 화재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을 위해 긴급재해 구호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대피소에서 아이들을 위한 긴급구호 물품을 전달하는 모습.

저는 어린이 구호단체 굿월드의 일원으로서 아이들에게 작지만 어떤 도움과 희망을 줄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방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부모들과 논의한 결과, 0~2세 아기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저귀와 3~12세 아이들의 위생을 지켜주기 위한 속옷을 긴급구호물품으로 정했습니다. 우선 걱정이 앞섰습니다.

재해 긴급구호도 처음 경험하는 활동일뿐더러 한국에 계신 국장님과 소통하며 혼자 진행해야하는 상황이기에 당황스러움이 덮쳤습니다. 구호물품을 다 구할 수 있을지, 내가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빨리 전달할 수 있을지, 수많은 물음과 불안함으로 한 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을 가지고 발걸음을 뗐습니다.

항상 저와 함께 있는 현지 멘토의 도움으로 다행스럽게 시장에서 200벌의 속옷을 구매했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기에 재빨리 움직였습니다. 아기들의 기저귀도 사고 난 뒤에야 대피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졌습니다. 방마다 가족들이 모여 있어 방을 돌며 긴급구호물품을 전달하기도 수월했고, 거의 모든 물품을 예상했던 인원 수 만큼 나눠줄 수 있었습니다. 

물품을 다 전달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려보니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모든 가정에 구호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작은 노력을 한 제가 부끄럽기도 하고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처음 경험해 본 활동을 혼자 풀어나가다 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다음 긴급구호 때는 보다 더 잘 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등을 생각하며 국제개발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굿월드가 어려움에 처한 주민들에게 작은 힘이 되었길 희망합니다.

[불교신문3530호/2019년10월30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