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0주년 맞이 특별기획’
사진으로 다시 만나는 청담대종사

1930년대 청담스님 모습. 당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운수행각을 했다.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덕숭산 정혜사 등 전국을 순례하며 초인적 의지력으로 고행정진했다.
1930년대 청담스님 모습. 당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운수행각을 했다.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덕숭산 정혜사 등 전국을 순례하며 초인적 의지력으로 고행정진했다.

 

청담스님(불교신문 초대 발행인)은 불교정화이념 실현을 위한 방편으로 1960년 1월1일 불교신문을 창간했다. 청담스님은 “불교정화는 단순히 비구와 대처 간의 싸움이 아니라 국민사상 개조운동”이라며 정부를 설득했다.

마침내 대처승은 원칙적으로 스님이 아니라는 종헌 개정과 비구승의 주도권을 인정한 통합종단의 출범을 성취할 수 있었다. 오늘 다시 사진으로 보아도, 큰스님의 의지와 기백, 결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1971년 조선일보 신년호 좌담에서 청담스님(왼쪽)이 종교지도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는 모습. 맨 오른쪽은 김수환 추기경, 그 옆에 한경직 목사의 모습도 보인다.
1971년 조선일보 신년호 좌담에서 청담스님(왼쪽)이 종교지도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는 모습. 맨 오른쪽은 김수환 추기경, 그 옆에 한경직 목사의 모습도 보인다.
1956년 네팔에서 열린 제4회 세계불교도대회에 참석한 청담스님(맨 왼쪽). 가운데 효봉스님 맨 오른쪽 동산스님의 모습.
1956년 네팔에서 열린 제4회 세계불교도대회에 참석한 청담스님(맨 왼쪽). 가운데 효봉스님 맨 오른쪽 동산스님의 모습.
1962년. 8년만에 화해하고 통합종단을 완성한 비구 대처측 대표들. 맨 왼쪽이 청담스님이다. 경산스님 행원스님 추담스님 등도 보인다. 당시 문교부가 주관한 불교재건위원회의 첫 회합을 앞두고 회의 진행절차와 재정문제 등을 논의하는 모습.
1962년. 8년만에 화해하고 통합종단을 완성한 비구 대처측 대표들. 맨 왼쪽이 청담스님이다. 경산스님 행원스님 추담스님 등도 보인다. 당시 문교부가 주관한 불교재건위원회의 첫 회합을 앞두고 회의 진행절차와 재정문제 등을 논의하는 모습.
1964년 도선사에 승려교육기관인 ‘실달학원’을 개설했다. 청담스님(오른쪽)과 성철스님은 “절집 기왓장이라도 벗겨 팔아서라도 승려교육을 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1964년 도선사에 승려교육기관인 ‘실달학원’을 개설했다. 청담스님(오른쪽)과 성철스님은 “절집 기왓장이라도 벗겨 팔아서라도 승려교육을 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1971년 11월19일. 동국대 대운동장에 사부대중 2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청담스님의 영결식이 종단장으로 봉행됐다. 국장(國葬)에 버금가는 규모였다. 사진은 서울 도심을 거쳐 도선사로 향하고 있는 청담스님의 운구행렬.
1971년 11월19일. 동국대 대운동장에 사부대중 2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청담스님의 영결식이 종단장으로 봉행됐다. 국장(國葬)에 버금가는 규모였다. 사진은 서울 도심을 거쳐 도선사로 향하고 있는 청담스님의 운구행렬.
청담 큰스님의 친필 불(佛)자.
청담 큰스님의 친필 불(佛)자.

정리=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3530호/2019년10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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