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연기법 바탕으로
완전한 행복 얻는 법 소개
“나 자신은 곧 우주 전체
남을 도와야 내가 행복해져”

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알까?

무착스님 지음 / 정화스님 옮김 / 북드라망

서기 4세기에서 5세기를 살았던 무착(無着)은 동생인 세친(世親, 바수반두)과 더불어 초기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사상가다. 그가 저술한 <섭대승론(攝大乘論)>은 대승불교의 인식론과 실천론의 기반을 놓았다고 평가받는다. 신간 <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알까? - 마음대로 풀어 쓴 섭대승론>는 섭대승론을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아뢰야식, 의타기성, 변계소집성, 원성실성 등 불교유식론의 난해한 개념들을 알기 쉽게 정리한 점이 특징이다. 궁극적으로는 부처님이 말씀한 연기설을 바탕으로 완전한 행복과 평화를 얻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섭대승론은 생명계 전체가 하나의 수레(一乘)이자 큰 수레(大乘)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수레에 타고 있고 또한 그 수레를 함께 끌어가기도 하는 공업(共業)의 중생이다. 무착의 원래 이름은 아상가(Asanga)로 무착은 이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집착하지 말라.’ 지금 주어진 이 몸뚱이에 연연하지 않으면 온 우주가 ‘나’라는 통찰을 얻게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무착’이란 인물 자체가 불교이고 깨달음인 셈이다.  

대승불교의 ‘대승’이란 생명계 전체가 하나의 큰 수레와 같다는 뜻이다. 개체들 하나하나의 생명활동이 종횡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세상이 성립되고 유지되어가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지면서도, 생명계의 역사 속에 흡수되어 그것과 소통하거나 그것에 기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아는 ‘중첩된 자아(無我, 무아)’이면서 ‘되어 가는 자아(無常, 무상)’이다. 사람이 아집에 괴롭고 번뇌에 허덕이는 까닭은 이러한 자아의 연기성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거나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섭대승론은 잘못 설정된 자의식과 자존심으로 상처받기에는 자신의 생명활동이 너무나 존귀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알까?'는 섭대승론을 바탕으로 자리이타 정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의 손을 잡아주면 내 손도 따뜻해진다.   사진 픽사베이
'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알까?'는 섭대승론을 바탕으로 자리이타 정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의 손을 잡아주면 내 손도 따뜻해진다. 사진=픽사베이

대승경론에서는 분별된 자아에 기초해 자신을 보고 있는 인지습관을 내려놓으라고 가르친다.  대승으로서의 자신을 보는 사유를 생각과 생각으로 이어 가는 지혜수행이 다른 무엇보다 앞서 실천해야 할 삶의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일상에서 만들어가는 언행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최상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라는 사유를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일이 정진이고 보살행이다.

“아비달마 대승경을 보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생명체들이 온전한 생명활동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지성, 곧 불성을 깨달아 대승의 경지에 든 보살님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분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낱낱의 생명활동은 생명계 전체가 그물망처럼 상호관계를 맺으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낱낱 그물코와 같은 개체의 생명활동이 전체의 생명활동과 연계되어 있으면서도 개체의 삶이 전체의 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세계를 이룬다는 이야기입니다(16~17쪽).”

책을 번역한 정화스님은 고암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해인사, 송광사, 백장암 등에서 수행 정진했다. <대승기신론>과 <육조단경> 등의 경전을 한글로 옮겼으며 지은 책으로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가 있다.

스님은 “섭대승론은 ‘인식의 토대’와 ‘인식현상’ 그리고 집착을 내려놓는 방법 등을 자세히 밝힌 책”이라며 “부처님이 설파한 연기법, 곧 생명계가 하나의 생명공동체라는 가르침을 기반으로 바라밀 수행을 한다면, 인식의 토대가 전환되면서 깨달음을 성취하게 된다”고 역설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자리이타’에 대한 설명과 권고가 많이 등장한다. 정화스님은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를 예로 들며 이기주의의 ‘해맑은’ 측면에 대해 소개한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낱낱 생명체가 자신의 유전자를 상속하기 위해서는 이기적 행위를 하기만 해도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유전자가 원활하게 상속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타적 행위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자리이타는 ‘남을 돕는 일은 결과적으로 나를 돕는 일’이라는 연기법의 생명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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