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0주년 맞이 특별기획’
불교신문으로 보는 근현대 불교사 명장면 ⑤ 2000년대

2000년대는 불교가 주요 환경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한 시기이자 종단 수행풍토 진작과 불교위상 재정립을 위해 노력했던 시기였다. 새만금 살리기 3보1배 2003년 5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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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대장경 불사 회향

한글대장경 불사는 1962년 통합종단 출범과 함께 조계종이 종단 3대 사업의 하나로 역경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의하면서 시작됐다. 경전 한글화를 통해 누구나 쉽게 부처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후 한글대장경 불사는 1964년 3월1일 운허스님이 동국역경원장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1965년 6월30일 한글대장경 제1집 〈장아함경〉을 펴낸 이후 37년만인 지난 2001년 4월25일 한글대장경 318권을 완간하며 한글역경불사를 회향했다.

이에 대해 당시 동국역경원장 월운스님은 “한글대장경이 한국불교를 발전시키는 초석으로 이용되길 바란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글대장경 불사 회향을 기념해 총무원과 동국역경원은 2001년 9월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한글대장경 완간 회향법회를 봉행하기도 했다. 불교신문(2001년 9월11일자)은 한글대장경 완간법회 현장과 완간 의미, 향후과제 등을 집중 조명했다.

- 불교신문 교계 최초 주2회 발행

불교신문이 2003년 1월1일부터 주2회 발행을 단행했다. 불교신문 주2회 발행은 종교신문 최초로, 1960년 창간호 발행 이후 약 40년 만에 제2의 창간이라고 불릴 만큼 획기적인 일이었다. 한국불교 언론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 주2회 발행을 위해 본지는 2002년부터 취재, 편집 등 제작시스템 정비 등 철저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이어 2002년 12월부터 본지 사고(2002년 12월3일자)를 통해 주2회 발행 소식을 알렸다.

“불교신문이 2003년 1월1일부터 교계 언론사상 최초로 주2회 발행으로 달라집니다. 1960년 1월1일 한국불교사상 최초의 현대적 신문으로 탄생한 불교신문은, 창간 43년만에 주2회 발행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불교언론사에 또 다시 신기원을 세우며 여러 신문 가운데 하나가 아닌 교계를 대표하는 유일 신문으로서의 위상을 다시한번 확인시켜드릴 것입니다….”

- 새만금‧천성산 살리기 운동

2000년대 들어 사회적으로 환경 문제가 이슈로 부각했다. 불교계는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동체대비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환경 의제를 주도해갔다. 2003년 2월 양산 내원사 지율스님은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 백지화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지율스님의 단식은 38일간 이어졌다. 불교신문은 단식 돌입부터 회향까지 지율스님의 단식 정진을 상세히 보도했다. 당시 정진을 회향하며 지율스님은 “많은 사람들의 힘이 모여 앞으로 환경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접근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됐으면 한다(2003년 3월18일자)”고 뜻을 밝혔다.

같은 해 3월 수경스님은 문규현 신부와 함께 새만금 살리기 3보1배에 나섰다. 300㎞ 거리를 3보1배로 정진하는 일정이었다. 본지는 ‘새만금 살리기 3보1배 시작’(2003년 3월25일자) 기사를 시작으로 특별취재팀을 꾸려 순례단의 서울 입성, 조계사 회향식, 수경스님 필담 인터뷰 등을 집중 보도했다.
 

신계사 대웅보전 낙성 2004년 11월26일자

-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 복원

남북불교 교류협력의 상징인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이 2004년 11월20일 당당한 위용을 드러냈다. 신계사 대웅보전은 남북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불교계가 한마음으로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유산을 복원한 성과였다. 신계사 복원불사는 1998년 남측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에 의해 최초로 제기됐다가 2002년 12월 조계종과 조선불교도연맹 간 합의각서가 체결되면서 본격화됐다. 이어 2004년 4월 착공식을 봉행한 이후 7개월 만에 신계사 대웅보전이 복원됐다.

본지는 금강산 동행 취재를 통해 신계사 대웅보전 낙성식 현장을 생생히 전했다. 낙성식과 함께 현지에서 열린 신계사 복원을 위한 후원의밤 행사, 이모저모 등을 통해 다양한 소식을 전했다. 당시 낙성식에서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소실됐던 신계사를 복원하는 것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화합과 통일의 초석을 놓은 것(2004년 11월26일자)”이라고 의미를 밝혔다.

- 양양 낙산사 화재

2005년 4월5일 강원도 양양 낙산사가 화마(火魔)에 휩싸였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발생한 낙산사 화재는 불자들은 물론 많은 이들은 비탄에 빠뜨렸다. 강한 바람을 타고 급격하게 번진 불길은 일주문을 거쳐 원통보전으로 옮겨 붙었고, 2시간 만에 주요 전각 등 17채가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종단은 긴급회의를 거쳐 재난구조팀을 낙산사에 급파해 피해복구지원에 나섰다. 불교신문(2005년 4월8일자) 역시 긴급하게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낙산사 피해 소식과 복구 현장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와 함께 ‘사찰 화재예방, 이렇게 해야 한다’ 기획 기사 등 사찰 화재 예방 및 방재시스템의 중요성을 심층 취재해 보도하는 동시에 피해복구를 위해 성금 모금도 펼쳤다. 당시 낙산사를 방문한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입었다. 2000만 불자와 종단이 나서 조속한 시일내에 원상복구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나가겠다”고 밝혔다.

-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개관

2005년 11월14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이 공식 개관하며 종단 역사가 새롭게 시작됐다. 총무원 청사 역사를 해온 불교중앙회관 시대를 마감하고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2002년 기공식 이후 3년여 간의 불사를 거쳐 문을 연 기념관은 이후 종단과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건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불교신문(2005년 11월19일자)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의 개관을 알리는 웅장한 법음이 울리자, 희고 노란 종이꽃으로 만들어지는 ‘꽃비’가 하늘을 뒤덮었다. 축포가 터지자,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비롯한 종단 안팎의 스님들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환희심이 충만한 순간이었다”,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제막식이 끝나자 기념관 1층 로비에서는 지관스님이 편찬한 불서가 배포됐다. 한국불교의 계율사를 정리한 이책을 받기 위해 스님들은 불자들의 경쟁이 치열했다”고 개관식 풍경을 다양하게 소개했다.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대법회 2007년 10월24일자

-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대법회

2007년 10월19일 ‘부처님 법대로 살자’를 기치로 시작한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기념대법회가 봉행됐다. 60주년 기념대법회는 봉암사 결사정신을 되새김으로써 종단의 수행풍토를 진작하고 전통승가의 수행풍토로 되돌아가 추락한 불교위상을 재정립하는 의지를 다지기 위한 취지에서 기획됐다. 이날 법회에 참석한 1만여 사부대중은 △명리 버리고 본분에 충실 △수행의 생활화 사회화 △각자의 직분에 충실 등 3대 실천지침을 지키자고 다짐했다.

불교신문 역시 법회 현장 기사와 이모저모, 종정예하 법어, 60주년 기념 선언문 등을 게재하며 60주년이 갖는 의미를 상세히 보도했다. 당시 총무원장 지관스님은 “성성적적한 모습의 불교, 추상같은 계율과 수행 가풍을 이어가는 종단을 만들어야 한다.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아 오늘의 불교를 새롭게 만드는 새로운 결사운동을 조직하는 날로 만들어야 한다(2007년 10월24일자)”고 밝혔다.

- 헌법파괴 종교차별 규탄 범불교도대회

2008년 8월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전국에서 스님과 불자 등 20만명이 모여 종교차별의 종식을 촉구했다.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가 열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빈번하게 발생한 공직자들의 종교편향 행위로 우리사회 종교간 화합이 저해되고 종교간 갈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대회를 통해 불교계는 이명박 정부의 종교차별 행위를 규탄하며 종교차별방지법 제도화와 우리사회 종교간 평화와 화합을 발원했다.

불교신문은 대회를 앞두고 호외(2008년 8월27일자)를 제작해 스님들과 불자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호외에는 범불교도대회의 의미와 본지에 보도된 이명박 정부 종교차별 사례, 종교차별을 바로 잡기 위한 불교계 활동 일지 등이 소개됐다. 호외에 이어 제작된 신문(2008년 8월30일자)에서도 ‘들었는가, 2천만 함성을…’ 대회 현장 기사를 비롯해 화보와 전국 사찰의 열기 등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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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파괴‧종교차별 규탄 범불교도대회 2008년 8월30일자

- 대중결계 포살제도 전면 시행

2008년 하안거부터 결계와 포살제도가 본격 시행됐다. ‘대중결계 및 포살제도’는 승가의 위의와 승풍을 진작시키기 위해 제32대 집행부 핵심사업으로 추진된 사업이다. 제32대 집행부는 결계‧포살제도 안착을 위해 앞장서며 스님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했으며, 2008년 3월 중앙종회 임시회에서 관련 법령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총무원장 지관스님이 직접 기자회견(2008년 4월12일자)을 열고 “결계와 포살은 모든 대중이 공화를 수행하는 승가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여법하게 회복하는 일이며, 나아가 떳떳하고 위대한 공동체 전통인 수행승가를 중흥하는 중요한 요건이다. 대중 스님들의 적극적인 이해와 참여로 활달한 수행승가가 더욱 중흥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불교신문은 전국 주요 사찰 포살법회를 지상중계하고, ‘대중결계와 포살 제도’ 중간점검과 전망 주제 특별좌담 개최 등을 통해 제도 정착에 기여했다.

- 대운하 반대 등 불교계 환경운동 지속

2008년 9월4일 수경스님과 문규현‧전종훈 신부 등이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 오체투지 순례에 나섰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으로 파괴되는 자연을 지키고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으로 인한 소통부재와 민주주의 위기 등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종교인으로서 평화와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기도에 나서겠다는 취지였다. 수경스님의 오체투지는 지리산에서 계룡산 중악단까지 1차 순례에 이어 2009년 계룡산에서 임진각까지 2차 순례로 이어졌다.

불교신문은 2008년 9월 순례 출발 기사를 시작으로 2009년 6월까지 2차 순례 회향 때까지 주요 순례 현장을 동행 취재하며 순례단의 행보를 상세히 소개했다. 순례 출발에 앞서 수경스님은 “우리사회는 지금 총체적 난국에 빠져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며 희망을 잃고 있다. 대립과 갈등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생명과 생명이 평화를 찾는 순례를 만들겠다(2008년 9월6일자)”고 밝혔다.

[불교신문3529호/2019년10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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