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오늘은 詩] 구석본 ‘가을의 말씀’
[문태준의 오늘은 詩] 구석본 ‘가을의 말씀’
  • 문태준 시인 · 불교방송 PD
  • 승인 2019.10.1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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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말씀에는 비유가 없다.
비유의 잎이 사라지고, 비유의 열매가 떨어지고
바람이 오직 바람의 음성으로 던지는 말씀,
현란한 몸짓과 안에서 번져
밤낮을 물들이던 빛깔이 완성한,

한 생의 구상화는 
낙엽이었네.

당신이 홀로 걷는 아스팔트길에
우수수 쏟아져 흩날리는 침묵의 말씀

-구석본 시 ‘가을의 말씀’에서
 


가을이 와서 잎은 물들고 열매는 익어 툭, 땅으로 떨어진다. 물든 잎사귀는 바람에 흩날리고 구석으로 몰려가며 나뒹군다. 현란한 빛깔과 무늬를 완성하지만 곧 바람에 실려 사라질 뿐이다. 시인은 가을 혹은 시간의 구상화는 낙엽이며, 낙엽은 가을의 “흔들리지 않는 정체”이며, “침묵의 말씀”이라고 썼다.

초록의 잎은 시들어 떨어지고, 왕성하던 것은 쇠하여 보잘것없이 되고 만다. 허세와 과욕의 잎사귀를 모두 떨어뜨리고서야 나무는 가을을 완성한다. 그처럼 후련하게 내려놓고서야 나무는 스스로 꼿꼿하게 홀로 선다.

시인은 다른 시 ‘가을의 의성어’에서 “가을날 산을 오르면 나무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쓸쓸, 나무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 쓸쓸, 쓸쓸,/ 아니,/ 나무와 바람이 주고받는 말/ 아니다 낙엽이 스치는 소리다”라며 가을의 고독한 서정을 노래했다.  

[불교신문3527호/2019년10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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