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대한 집착 내려놓는 것”

마음 의지하면 고통은 필연적
공허해지면 좌절·고뇌하게 돼
어떤 즐거움에도 집착 말아야

등현스님
등현스님

4성제는 모두 ‘고의 느낌(苦受)’과 연결되어 있다. 고의 원인은 집성제, 소멸이 멸성제, 고를 소멸시키는 방법이 도성제이다. 그러므로 고라는 느낌(苦受)의 실체를 바르게 아는 것은 불교 수행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수념주를 경량부의 입장에서 정리하면 즐거운 느낌은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고통이 A에서 B로 변화하는 것을 즐거움이라고 오해하는 것이고, 오직 괴로움만이 진실이다. 설일체유부의 입장에서 보면 3수가 모두 실재하지만 락수는 변화의 고통, 불고불락수는 무상의 고통에 포섭되기 때문에 괴로움이다. 그러므로 고통 그 자체이거나 또는 고통의 원인인 ‘그 어떤 즐거움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수념주의 수행인 것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마음이 있고, 마음은 크게 악취와 선취로 이루어진 욕계의 마음, 색계, 무색계의 마음 그리고 출세간의 마음으로 나누어진다.

이들 마음은 8쌍으로 이루어진 16가지의 마음인데, ①탐욕이 있는 마음은 수상행(受想行)의 번뇌와 함께하는 악취(惡趣)의 마음이고, ②탐욕이 없는 마음은 욕계 선취(善趣)의 마음이다. ③진심이 있는 마음은 수상행의 번뇌와 함께하는 악취의 마음이고, ④진심이 없는 마음은 번뇌와 함께하지 않는 욕계 선취의 마음이다. ⑤치심이 있는 마음은 수상행의 의심, 후회와 함께하는 욕계 악취의 마음이고 ⑥치심이 없는 마음은 의심과 후회가 없는 욕계 선취의 마음이다.

⑦위축된 마음은 해태와 혼침과 함께하는 마음이고, ⑧산란한 마음은 들뜸과 후회와 함께하는 마음이다. ⑨집중되지 않은 마음은 삼매가 없는 마음이고 ⑩집중된 마음은 근접삼매, 본삼매와 함께하는 마음이다. 위의 5쌍중 앞의 5가지 마음은 선정을 장애하는 욕계의 다섯 가지 장애에 해당한다.

⑪고귀하지 않은 마음은 감각적 욕망과 함께하는 마음이고, ⑫고귀한 마음은 색계, 무색계의 마음이다. ⑬유상(有上)의 마음은 아직 위가 남아있는 색계의 마음이고, ⑭무상(無上)의 마음은 더 이상 위가 없는 무색계의 마음이다. ⑮해탈된 마음은 열반과 함께하는 마음, 해탈되지 않은 마음은 열반을 경험하지 않은 마음이다.

이처럼 8쌍의 16개 마음은 수행자 스스로가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점검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수행자의 마음이 욕계의 악취 또는 선취에 있는지를, 선정이 있는지 없는지를, 색계 선정의 마음인지, 무색계 선정의 마음인지를 혹은 열반을 성취한 마음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자각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마음 자체는 달과 같이 비추어 아는 작용 하나뿐이다. 마치 달은 하나이지만 강을 비추면 강의 달, 호수를 비추면 호수의 달이라 칭하는 것처럼, 16 심소(心所) 중 어느 심소와 같이 있는가에 따라서 하나의 마음이 16가지로 보여 지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 하나인 마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6가지 식을 마음이라 한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을 만나서 발생한 의식을 전오식, 의근(意, mano)이 전오식을 대상으로 재인식하는 것을 제6식이라 하고, 이 여섯 가지 식을 모두 마음이라 하는 것이다.

마음은 악도에서 무색계 내지는 열반까지의 여러 가지 심소들과 함께하지만 그것들을 아는 작용을 하고, 과거의 모든 기억에 의해 형성되어진 의(意, mano)가 대상들과 함께할 때 발생하지만 그것들을 알며, 그것들로부터 물들지 않은 상태가 마음이다. 

하지만 여섯 가지 식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작용과 함께 발생하고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의 수많은 대상의 생멸과 함께하기 때문에 여섯 가지 식 즉 마음은 끊임없이 바뀌며 생멸하는 무상한 것이다. 스스로의 마음만 무상한 것이 아니고, 이웃과 중생들의 마음도 또한 무상하다. 이처럼 무상한 마음에 의지하고 집착하면 고통은 필연적이다.

이 마음의 공허함은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만들어내고 그 때문에 좌절하고 고뇌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의지할 대상도 아니고 집착할 바도 아니라는 것을 관하여 마음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이 바로 심념주이다. 그리고 이처럼 무상하며 내 것도 아닌 마음을 집착하고 의지하여 절망하고 좌절하는 중생들을 가련히 여겨야 한다.

[불교신문3527호/2019년10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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