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60주년 맞이 특별기획
‘그 발걸음이 역사가 되다’
김시열 불서출판 운주사 대표


1993년 우연히 출판계 입문 후
2002년 운주사 대표로 활동해
불서 보며 충격…인생관 바꿔

“베스트셀러만 의미 있는 책?
인기 없어도 가치 있다면 OK”
불교 기초 학술서에 지속 투자
‘이 시대의 대장경’ 제작 매진

솔직히 고백하면, 기자는 그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꽤 오랫동안 교계에서 지내왔지만 이름만 들었을 뿐 만난 건 처음이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처음 만난 사람을 이 지면에 소개하는 건 아주 위험하다. 제대로 된 검증이 안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사’를 이룬 인물을 다루는 기획이라면 더욱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지면에 어떤 분을 소개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은 그를 떠올렸다. 그리고 칭찬했다. 왜 칭찬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이번 인터뷰의 시작이었다. 이내 칭찬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운주사는 지금까지 모두 560종의 책을 출간했다. 운주사는 얼마나 많은 책을 팔 것인가보다 얼마나 세상에 가치 있는 책을 만들 것인가에 무게중심이 가 있다. 사진은 운주사가 만든 서적들과 함께 한 김시열 대표.
운주사는 지금까지 모두 560종의 책을 출간했다. 운주사는 얼마나 많은 책을 팔 것인가보다 얼마나 세상에 가치 있는 책을 만들 것인가에 무게중심이 가 있다. 사진은 운주사가 만든 서적들과 함께 한 김시열 대표.

 

운주사 대표 김시열 씨를 만난 건 10월4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였다. 명함을 주고받으며 눈길을 끈 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도서출판’이 아닌 ‘불서출판’이라고 운주사를 소개하는 문구였다. 애당초 운주사는 불교서적을 전문으로 만드는 곳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젊은 직원이 안 들어오네요.” 김시열 대표의 말 첫 마디는 푸념이었다. “출판사뿐 아니라 출판계에 활력이 떨어지고 있어요. 인재 영입과 창업 둘 다 정체되거나 서서히 퇴보하는 느낌입니다.” 불교출판계에 얼마나 있었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변이었다. 출판계 특히 불교출판계의 현재가 녹록치 않음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김 대표가 불교출판에 입문한 건 1993년이다. 큰 원력을 세우고 들어온 건 아니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군 제대 후 취업을 고민하던 차에 우연한 기회가 왔고 그 기회를 잡았다. 당시 운주사는 총판 산하에 출판부가 있었고, 김 대표는 출판부에서 일을 했다. 그 후 운주사는 출판사를 따로 분리했고 김시열 씨는 새로운 운주사 출판사의 대표를 맡게 됐다. 2002년 일이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가 그가 출판계에 들어온 이유라면 이유였다. “스님과의 인연도 없고, 불교학생회도 다니지 않은 그야말로 그냥 평범한 불자”였던 김 대표에게 ‘문서’로서 접한 불교는 큰 충격이었다. “정말 좋았다.” 이 한 마디에 불서를 보며 받았을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에 갖고 있던 내 세계관과 인생관, 사상이 모두 깨져나갔다. 그리고 헤어나지 못했다.” 그 ‘헤어나지 못함’은 불서출판에서 지금도 여전히 손을 놓지 못하게 하고 있다. 

출판사 하면 대단한 것으로 느낄 수 있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한, 이른바 책이 대박이 난, 소수의 출판사를 걷어내면 열악하기 그지없다. 예전보다 책이 인기 없는 시대가 되면서 더욱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불교출판계는 두 말하면 입이 아프다. 워낙 시장이 좁은데다 인기를 끄는 저자 층도 얇다. 아무리 ‘헤어나지 못하는’ 충격을 받았더라도 이처럼 좋지 못한 환경 속에서 불서출판을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게다가 그 고집에는 특별함이 있다는 얘기도 전해들은 터라 더욱 듣고 싶었다. 

김 대표는 ‘소명의식’이라는 낱말을 조심스레 꺼내들었다. 보편적으로 출판사의 역할은 누군가의 생각을 책이라는 상품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택받아 의미와 영향을 주게 하는 중간매개 혹은 소통의 매개체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출판사가 중간매개로서 역할을 하다 보면 누군가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고 구별하려 든다는 것이다.

“출판사는 절대자가 아니다. 저자의 생각을 출판사가 분별해서 맞다 틀리다 판단해서는 안 된다.” 대중에게 잘 팔릴 책인지 아닌지도 그 분별에 포함된다. 상업적인 가치에만 휘둘려 다른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출판 철학이다.

“대중적으로 호응받지 못하는 책도 분명 있습니다. 분명 의미가 있는 책인데도, 내(출판사)가 판단해 가치가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출판사 대표에 더해 불서를 출판하는 사람으로서의 ‘소명의식’을 알아야 비로소 그의 어리석게 보일 수 있는 행보가 이해가 된다. 김시열 대표에게 불교서적은 ‘법보(法寶)’다.

“팔만대장경은 그 시대의 법보였습니다. 하지만 팔만대장경이 우리 시대의 법보인지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고 읽고 배우고 느낄 수 있게 해야 법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소명의식은 여기서 비롯된다. ‘법보’를 생산해낸다는 책임과 의무다. 그래서 ‘누군가의 생각을 출판사가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고 이 시대의 법보를 만든다는 책임감으로 만든 책’, 운주사에서 불교서적이 만들어지는 원칙 중 하나가 됐다. 

“출판사는 세상의 다양한 시각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다양하고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소통의 루트는 책이 이제 유일하다시피 합니다.” 운주사의 이같은 출판 철학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불교학술에 적용되고 있다. 학술서는 기본적으로 인기가 없다. 특정 계층만 향유되거나 특정 인물에게만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학교 교재로 채택되면 대박일 정도로 수요가 적다. 그럼에도 운주사는 인기 없는 학술서를 매년 10권 정도 출간하고 있다.

“학술은 기초입니다. 당장 돈으로 환원되지는 않지만 기초이자 토대 없이 건물이 세워지지 않듯이 학술이라는 인프라가 튼튼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운주사의 이른바 ‘소명의식’이 발휘된 대표적인 서적이 ‘프라즈냐 총서’다. 현재 44권이 발간된 학술서 시리즈로, 주제가 새롭고 신진 학자들이 내놓은 이론들을 선별해 내놓는다. 저자의 인지도도 낮고 낯선 주제나 이론이라 학계에서 통용되지 못한 탓에 자본을 들여 책으로 만들기 꺼려지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김 대표가 이를 ‘총서’로 묶은 이유 또한 특별하다. 단행본으로 발간하면 생명력이 빠르게 소진되기 때문이다. 금방 잊힌다는 것이다. 좀 더 오랜 기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속내가 담겼다. 

이를 설명하면서 김 대표의 표정은 묘했다. 자랑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난감해했다. 어찌됐든 업체를 이끌고 직원에게 월급을 줘야 하는 자리로서 김 대표에게 인기 없는 학술서적의 지속적인 발간이 부담될 수밖에 없을 터. “독자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습니다.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의 소명의식은 재차 강조됐다. “베스트셀러만 의미 있는 책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100권 밖에 팔리지 않았어도 누군가에겐 정말 큰 의미로 다가서는 책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출판사가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 책을 내지는 않고 있다는 설명이 붙었다. 

어렵사리 불교출판의 길을 가고 있는 그에게 앞날은 어떨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결코 밝지 않아 걱정스럽다는 예상 답변과는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밝다.”

젊은 인재는 안 들어오고, 인터넷과 SNS에 밀리고, 출판사 없이도 개인출판이 손쉽게 되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는 불교출판의 미래는 밝다고 확언했다. 운주사의 <한영불교대사전>이 7~8년을 기획해 야심차게 발간됐지만 김 대표의 말을 그대로 옮겨 표현하면 “박살이 났는데”도 말이다.

“불교가 가진 콘텐츠가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원석과 같은 콘텐츠를 보물로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반출판계에서도 점차 불교가 가진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발굴해 가공하면 사회 전체에까지 큰 영향력을 끼치고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역할을 우리가, 출판사가 할 수 있습니다.”

불교사상 없이 현대 서양심리학을 말할 수 없게 된 현상도 이를 증명한다. 다만 출판사만 나선다고 해결될 사안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종단을 포함한 교계 전체가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우선 불교서적 시장이 넓어져야 한다. 사찰마다 도서관을 세우고 불서읽기를 권장하고 독서모임이 활발해지는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병행돼야 한다. 내부 시장이 넓고 견고하면 외부시장에도 금세 파급력을 미칠 수 있다. 

불서출판의 길을 명확한 철학과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뚝심 있게 이끌어나가고 있는 김시열 대표. 그 이유로 본의 아니게 ‘불교학술 전문 출판사’라는 별칭이 붙었지만 도리어 정체성을 세워준 것이라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김 대표. 

“지금까지의 길을 잘 가고 있는지 항상 성찰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책이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발간한다는 초심을 잃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언제까지 출판을 하고 싶은가 묻는 마지막 질문에, 죽을 때까지 불교출판을 계속 하겠다는 김 대표의 말이 욕심으로 들리지 않고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불교신문3527호/2019년10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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